기사입력 2016-03-21 19:24:00
기사수정 2016-03-21 22:27:16
출근길 출입문까지 입석 승객 빼곡… 수도권 노선 동승취재
“더 들어가세요! 이동 좀 해주세요!”
21일 오전 7시15분쯤 경기도 성남시 분당 이매촌 한신아파트 정거장. 분당을 출발해 서울역 환승센터로 향하는 직행좌석형버스(광역버스) 기사 정모(54)씨가 승객들을 향해 큰소리로 양해를 구했다. 하지만 좌석은 꽉 찼고 통로에도 15명 정도가 다닥다닥 붙어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한참을 망설이던 정씨는 결국 더 태울 수 없다고 판단, 정류장에 줄지어 선 승객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연발하며 출입문을 닫았다. 정씨는 “출근 시간대에는 3분 간격으로 한 대씩 버스를 투입하는데도 출입문 앞까지 입석 승객으로 가득 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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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경기 수원에서 출발해 서울 강남역까지 가는 광역버스를 타고 출근 중인 승객들의 모습 |
버스가 고속도로 입구 언저리에 이르자 교통량이 몰리면서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그때마다 입석 승객은 이리저리 휘청거렸고 곳곳에서 신음이 터져나왔다. 고속도로에 들어선 버스가 지체됐던 시간을 벌충하려는 듯 전용차선을 맹렬한 속도로 달렸다. 속도계 바늘도 시속 100㎞를 찍었다. 하지만 대부분 입석 승객은 한 손으로 버스 손잡이 등을 잡고 몸을 지탱한 채 다른 손에 든 스마트폰에 열중했다. 비슷한 시각 경기도 수원과 용인에서 서울로 향하는 광역버스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 입석 승객을 콩나물시루처럼 가득 태운 채 고속도로를 질주했다. 행여 다른 차와 추돌 등 사고라도 나면 참사로 이어질 상황이 출퇴근길마다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가 안전을 강조하면서 같은 해 7월부터 서울과 수도권을 오가는 광역버스의 좌석제(입석금지)가 시행됐다. 그러나 그때뿐이었던 셈이다. 당시 정부는 충분한 대책 없이 광역버스 입석금지를 밀어붙였다가 이용자들 불만이 비등하자 슬그머니 ‘탄력적 운영’을 허용한 뒤 내버려뒀다.
지난달 1일 경기도는 광역버스 입석률이 2014년 7월 좌석제 시행 전 18.1%에서 시행 후 9.6%로 8.5%포인트 낮아졌다고 발표했다. 다양한 대책을 통해 버스 1대당 승객 8.4명이 서서 타던 게 4.9명으로 줄었다고 자화자찬했다.
하지만 시민 반응은 싸늘했다. 용인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직장인 서모(29)씨는 “나도 그 내용을 기사로 봤는데 숫자로 장난치는 것 같다”며 “아침엔 통로에 선 승객만 20명을 넘을 만큼 빽빽한데 평균치로 호도하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주무부처도 현실적 어려움을 인정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정부와 경기·서울·인천 등 수도권 3개 지자체는 버스 공급력 확대, 운행효율성 증대 등 다각적 방안으로 광역버스 좌석제 정착을 위해 노력 중이다“면서도 “언제 정착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광역버스 이용객들로서는 기약 없이 출퇴근 때마다 위험천만한 질주를 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입석금지 시행 이후 버스업체에서 수익 향상을 위해 뒷문을 막고 좌석 4개를 추가하면서 좌석 간격이 좁아지고, 경기도가 지난해 6월 버스업체 손실 보전 명목으로 요금을 400원(20%) 인상한 것도 승객의 불만을 사고 있다. 경기도의회 이재준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실효성 없는 정부의 입석금지 정책이 업체의 배만 불려준 꼴이 됐다”고 지적했다.
글·사진=김선영·이상현·이정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