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직관만이 시대의 감성을 가장 잘 담아내요”

사진집 ‘타인의 땅’ 펴낸 이갑철 사진작가
사진작가 이갑철
우리 땅, 우리 사람, 우리 정신을 흑백 아날로그 카메라에 담아오고 있는 이갑철(57) 사진작가가 사진집 ‘타인의 땅’(열화당)을 펴냈다. 1988년 서울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열렸던 개인전 ‘타인의 땅’ 출품작들을 묶은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사진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죽으면 죽으리라 마음먹고 작업을 한 것입니다.”

그는 한때 카메라에 죽을 사(死)자를 붙이고 다녔다. 지금은 늘 휴대하고 다니는 카메라 상품로고에 붉은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고 있다. 피를 흘리는 비장한 마음으로 작업을 하겠다는 각오의 표시다.

그에게 잘 팔리는 사진도 병행해 작업하는 것이 어떠냐고 넌지시 물었다. 돌아온 답변은 단호했다.

“정신을 양분해서 쓰면 결국은 에너지도 나뉘게 됩니다. 결국 내 자신과 모두에게 사기를 치는 거나 별반 다를 게 없지요. 그게 용납이 안 돼요.” 그러다 보니 그는 아내를 고생시키게 됐다고 털어놨다.

그는 사진을 직관적으로 찍는다. 직관은 가슴속에 무언가 가득차 있을 때 나온다고 했다.

장난감 총을 쥔 어린아이와 TV 속 전두환 전 대통령의 모습이 많은 것을 암시해 주고 있는 작품 ‘경기도 성남’
“어느 순간 대상을 만났을 때 탁 터져나오는 겁니다. 선적(禪的) 경지에 다다랐을 때의 직관 같은 것이지요.” 실제로 그의 인물이나 풍경 사진을 들여다보면 선적인 느낌을 받게 된다. 그는 삶 자체도 그런 자세로 살아야 선적 대상을 만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대학시절 그는 고향 시골에서 올라와 서울 변두리에 몸을 의탁했다. 동가식서가식하던 떠돌이 청년이었다. 그에게 모든 환경은 타인의 땅이었다. 1988년 올림픽을 전후한 정치·사회적 분위기도 매한가지였다. 그는 이를 충실히 카메라에 담았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입지를 굳히는 단초가 됐다. 임응식, 강운구에 이어 그는 3세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꼽힌다.

동년배 시인 이문재는 그의 타인의 땅 사진을 두고 이렇게 평했다. ‘타인의 땅’은 1980년대 한국사회의 벽화이자 그 시대를 살아낸 한국인의 초상이다. 그렇다면 타인은 누구인가. 타인을 군사정권이나 외세, 기득권층으로 한정하는 것은 지나치게 협소한 시각일 수 있다. 1960년대 이후 전개된 근대화, 산업화, 도시화를 배경으로 하면 그 시절을 살아낸 대다수 사람들에게 ‘타인의 땅’은 집단무의식이다. 지난 세기 한국인은 고향 상실이라는 집단적 트라우마를 공유했다. 고향을 떠난 청춘들, 고향을 등진 가장들이 깃들 수 있는 도시는 도시의 변두리였다. 도시, 도시의 일터, 도시의 셋방이 모두 타인의 땅이었다. 타인의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삶은 디아스포라의 삶이다. 타의에 의해 고향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고단한 디아스포라의 후예가 지금 독거청년이 되어 옥탑방과 고시원, 원룸을 전전하고 있다. 지난 30년 사이, 마주치는 사람마다 타인이고, 곳곳이 타인의 땅이 되고 말았다.

3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작가는 지금도 권력, 자본, 시장이 여전히 우리 모두에게 타인의 땅으로 여전히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타인의 땅 언저리에 승자독식만이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 같다. 사진집에 실린 작품은 29일까지 갤러리 나우에서 볼 수 있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