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6-04-17 18:02:52
기사수정 2016-04-17 22:35:37
남의 일에 무관심한 분위기 탓
구마모토 지진에 무감각 반성
아베도 과거사 체험 안해 답습
케리 평화공원 방문 사과로 몰아
잘못 청산하고 똑바로 행동해야
지난 14일 밤 한국에 사는 친구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 “일본에 지진이 났다는데 괜찮아?” 그 친구는 지진이 발생한 구마모토가 어디쯤 위치해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도쿄에서는 전혀 못 느꼈다. 구마모토는 거리상으로 도쿄보다 부산이 더 가깝다”고 얘기해줬다. 구마모토와 가까운 후쿠오카에 사는 지인에게 연락해보니 “별로 큰 진동은 없었다”고 했다. 잠깐 인터넷에 접속해 지진 뉴스를 검색했다. 건물이 무너진 곳이 있다는 얘기는 있었지만 사람이 죽거나 다쳤다는 얘기는 없었다. “별일 아닌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관심을 껐다.
다음 날 아침 신문을 보니 지진으로 무너진 집 사진들이 1면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큰 제목으로 사망자 1∼2명이라고 적혀 있었다. 지난해 80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네팔 지진과 비교하면 ‘별로 큰 일은 아니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무감각한 나 자신을 문득 깨닫고 깜짝 놀랐다.
일본 도쿄특파원으로 부임해 두 달도 채 안 된 지난해 5월 사이타마현 북부에서 발생한 규모 5.5의 지진으로 도쿄에서 진도 4의 진동이 감지됐다. 기자는 처음으로 경험하는 지진 충격에 바짝 긴장했다. 이번 지진은 규모 6.5에 진도 7이었다. 집이 무너지고 수십 명이 숨지고 수천 명의 사상자가 났다. 계속되는 여진에 밤새 두려움에 떨었을 구마모토 주민들을 다시 생각해봤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지진 피해 사망자들의 명복을 빈다.
언제부터인가 나와 관계없다고 여기는 일에 너무 무관심하게 된 것 같다. 핑계일 뿐이지만 혹시 일본 분위기에 물든 것일까. 남에게 절대 폐를 끼치지 않으려 하고, 남의 일에 간섭하지 않으려 하는 분위기 말이다.
일본 정치인들을 보면 서민들의 삶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만 해도 ‘합계출산율 1.8’을 정책 목표로 내걸었지만 보육시설 문제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보육원 떨어졌다. 일본 죽어라’라는 글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을 때 그는 ‘익명으로 작성된 글’이라는 이유로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별일 아니라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다 주부들이 국회 앞 시위와 서명운동을 벌이자 부랴부랴 긴급대책을 내놓았다. 아이가 없는 아베 총리에게는 보육 문제는 딴세상 얘기였을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전후 세대인 아베 총리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자행한 잘못을 사과하는 문제에 관심이 없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자신은 경험하지 않은 일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그는 아무런 죄책감이나 부끄러움 없이 역사 수정과 헌법 개정 등 ‘전후체제 탈피’에 매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최근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을 방문해 헌화한 것도 아베 총리의 전후체제 탈피 작업의 성과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일본은 케리 장관의 평화공원 방문을 계기로 ‘피해자 코스프레’를 펼치면서 미국이 히로시마 원폭 투하를 사과했다는 쪽으로 몰아가고 있다. 케리 장관의 평화공원 방문을 마중물 삼아서 차제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도 추진하고 있다.
일본의 아전인수 행보를 바라보는 한국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일본은 “일본 국민이 원폭 피해를 본 것은 사실 아니냐”면서 한국의 이런 시선이 못마땅하다는 투다. 마치 불량학생이 자신의 잘못은 덮어둔 채 교사가 과잉 체벌했다며 사과하라고 요구하는 모양새다. 괴롭힘을 당했던 학생의 사과 요구는 애써 외면하면서 말이다.
일반인이라면 몰라도 국가 지도자는 관심이 없어도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아베 총리의 행보를 보면 어떤 국내외 현안에 대해서는 지도자답지 않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16일 지진 피해 지역인 구마모토현 시찰 일정을 취소했다고 한다. 더 급한 일정이 있었을 수 있지만 지진 피해 주민들을 격려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정이 있었을까 싶다. 일본군 위안부나 국내 보육 문제에서 보였던 대응이 재연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상규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