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6-04-26 19:14:17
기사수정 2016-04-26 22:27:55
수주급감·해양플랜트 악재 등 후폭풍… 작년 조선·플랜트 근로자 1만5000명 실직 / 올해 폐업한 현대중 협력 업체만 10곳… 빅3 조선사 올해 수주 선박은 3척 고작
/ 지역 유통업계·음식점 매출 20% 이상↓
지난 25일 경남 고성군 동해면 봉암리 국도변의 한 선박부품 생산업체. 망치와 기계 돌아가는 소리로 시끄러워야 할 공장은 적막감이 엄습할 정도로 고요했다. 출입을 막는 쇠줄만 공장 입구에 걸려있을 뿐 인적을 찾을 수 없어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20여명의 근로자가 일했지만, 지난달부터 일감이 뚝 끊겨 같은 달 22일 문을 닫았다. 공장 관리인 장문성(65)씨는 “3년 전에도 일감이 없어 2년을 쉬고 1년 전부터 겨우 공장을 가동했는데 또다시 문을 닫게 됐다”며 “요즘 같은 때 근로자 임금을 체불하지 않은 것만 해도 어디냐는 말이 나오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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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제3차 산업경쟁력 강화 및 구조조정 협의체’ 회의에서 조선·해운업의 구조조정 방안을 밝힌 26일, 이달부터 작업을 중단한 울산시 울주군 현대중공업 해양사업본부 온산공장의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울산=남정탁 기자 |
불황의 늪에 빠진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논의가 급물살을 타면서 부산과 울산, 경남, 포항 등 동남권 경제벨트가 휘청거리고 있다. 중소 조선업체와 협력업체에서는 ‘수주절벽’으로 일감이 끊기며 벼랑 끝에 몰린 절박한 상황에서 ‘빅3’로 불리는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의 구조조정까지 본격화하면 문을 닫는 업체가 속출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26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중대형 조선사 9곳의 조선·해양 관련 근로자 1만5000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수주 급감과 해양플랜트 악재, 빅3의 구조조정과 이에 따른 협력업체의 경영 악화 등의 결과다. 올해 폐업한 현대중공업 협력업체만 벌써 10곳. 지난해는 57개 사내협력업체가 문을 닫았다. 거제에서는 지난해부터 올 3월까지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협력사 45곳이 폐업했다.
한 해 800억원의 매출을 올려 지역 중·고등학교 장학사업을 했던 경남의 한 선박부품 생산업체도 올해 초 문을 닫았다.
조선·해양플랜트 관련 기업들이 가입된 한국해양플랜트전문기업협회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공장 규모를 확장했지만, 저가 공세를 펴는 중국과의 경쟁에서 뒤처지면서 일감이 끊기기 시작했다”며 “시설투자 비용이 고스란히 빚으로 돌아와 결국 도산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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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문을 닫은 경남 고성군 동해면 소재 삼성중공업 협력업체 인광성고성공장이 26일 썰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고성=남정탁 기자 |
이 협회 회원사 168곳 중 14곳이 비슷한 이유로 줄줄이 폐업했다. 단가 인하로 마진율이 떨어져 일할수록 손해인 데다 은행에서 조선·해운업 대출창구를 닫으면서 자금난이 겹치게 된 까닭이다.
저유가 상황이 길어지면서 발주처들의 해양플랜트 인도 연기가 이어지는 것도 부담이 되고 있다. 전체 대금의 30%를 선수금으로 받고 인도할 때 나머지 70%를 받는데, 이에 따른 피해액을 조선업계가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자금력이 튼튼하지 못한 협력업체는 타격이 더 클 수밖에 없다.
거제시 사등면 성내협동공단 내 ㈜신성 이성신 대표(60)는 “원청업체들이 수주를 받아 일감이라도 있다면 해결책을 모색해볼 텐데 답이 없어 더 답답하다”며 “이대로라면 중소 조선업체와 협력업체의 60%가 도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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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26일 `제3차 산업경쟁력 강화 및 구조조정 협의체` 회의에서 조선·해운업의 구조조정 방안을 밝힌 가운데 경남 거제시 상성중공업 인근 원룸촌 부동산 알림판에 원룸 월세를 알리는 전단들이 가득 붙어 있다. 거제=남정탁 기자 |
김대제 현대중공업 사내협력사연합회장은 “올해보다 내년, 내후년이 더 걱정”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 진행 중인 선박 건조는 대부분 2년 이전에 수주한 물량이다. 국내 빅3 조선사가 올해 1분기 수주한 선박은 현대중공업의 3척이 전부다.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은 한 척도 없다.
선박 원자재를 공급하는 철강도시 포항도 침울하다. 포항철강공단에서 파이프를 생산하던 P사 대표 김모(65)씨는 “생산된 제품이 판매되지 않아 공장 가동이 중단됐고, 60여명의 직원을 위해 2∼3개월 버텼지만 결국 문을 닫았다”며 “공장을 매각하려고 내놨지만 이마저 팔리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포항철강공단의 휴·폐업 업체는 비단 이 회사뿐만이 아니다. 공단 곳곳에 공장 임대와 매각을 알리는 현수막이 내걸리고 있다. 지난 한 해에만 14개 업체가 휴·폐업으로 문을 닫았다. 올해도 휴·폐업 업체가 늘면서 공단 내 공장 343개 가운데 폐업이나 휴업에 들어간 곳은 전체의 11%인 39개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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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26일 `제3차 산업경쟁력 강화 및 구조조정 협의체` 회의에서 조선·해운업의 구조조정 방안을 밝힌 가운데 25일 경남 고성에 위치한 한 협력업체가 문을 닫고 썰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고성=남정탁 기자 |
이들 지역 경제도 한파를 겪고 있다. 일자리가 줄면서 현대중공업이 있는 울산 동구에서는 원룸과 상가 등 부동산 매물이 최근 4개월 동안 20∼30% 증가했다. 유통업계와 음식점 매출은 20% 이상 감소했다. 포항지역도 일반음식점 폐업 수가 2013년 326곳에서 2014년 336곳, 지난해 391곳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거제지역의 외국인 대상 렌털업계도 얼어붙었다. 호황기 때 300만원을 웃돌던 전용면적 109㎡(33평) 아파트 월 임대료는 150만원까지 떨어졌고, 이마저도 입주 외국인을 구하지 못해 비워두고 있다. 렌털업을 하는 박모(79)씨는 “일반인 전세로 전환하고 임대료도 대폭 깎았지만 문의전화조차 없고, 팔려고 해도 살 사람이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거제·고성·통영·포항·울산=안원준·장영태·이보람 기자 bora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