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서진(45) 앞에 달린 '예능인' 수식어가 낯설지 않다. 마음이 내키는대로, 무언가 덜어내거나 더하지 않은 모습에 시청자는 열광했다. 나영석 PD의 '꽃할배' 시리즈, '삼시세끼'에서 불평 불만 가득한 투덜이 캐릭터로 시청자를 휘어잡더니 최근 종영한 MBC 주말드라마 '결혼계약'에서는 안하무인 까칠남에서 한 여자만 바라보는 순정남으로 변해가는 한지훈 캐릭터로 시청자를 무장해제시켰다.
이서진은 "'삼시세끼'가 본모습"이라며 "갑작스런 지고지순한 연기를 시청자가 어색할 것 같아 '삼시세끼' 안에서 연기하려고 했다"고 한지훈의 연기 톤을 평소 모습으로 가져간 의도를 밝혔다.
계산은 맞아떨어졌고, 한지훈 캐릭터는 진정성있게 시청자에 와 닿았다. 툭툭 던지는 말 속에 장난기가 묻어났고 속깊은 배려가 전해졌다. 자신을 꺼내보인 예능 덕에 오해와 편견의 시선은 많이 걷혔다지만 아직 이서진을 지배하는 이미지는 선뜻 다가서기 어려운 '연예인'이다.
먼저 '차도남(차가운 도시 남자)' 이미지. 이서진이 작품 속에서 보여준 모습은 외모와 재력 모든 걸 갖춘 완벽남에 가까웠다. 엄친아 스펙을 갖춘 현실 속 이서진 또한 극중 모습과 크게 동떨어지지 않은 모습이다. 자연히 세상과 거리를 두며 자신의 멋에 도취해 사는 차도남이지 않을까 지레 짐작할 만하다. 이서진은 "솔직한 모습이 차가워보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며 실제 성격을 털어놨다.
"왜 제가 차가울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차가운 건 아니고, 말로 표현하는 걸 싫어해요. 친하면 원래 더 표현 안하고 심하게 대해요. 남자끼린 그렇잖아요. 그게 차가워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들지만요. 가식적인 걸 싫어하고 솔직한 편이에요. 제 앞에서 말로 칭찬하는 것도 싫어요. 그저 제가 좋아하고 인정한다는 것을 느끼길 바랄 뿐이죠. 선물 주면 감동받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요."
이서진은 어느덧 마흔 중반, 중년에 접어들었지만 미혼이다. 솔로 생활을 즐기거나, 솔로를 지향하는 독신남일 것이라는 오해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는 "이서진은 결혼할 생각이 없는 것 같더라"는 '절친' 김광규의 언급으로 더욱 굳어지는 듯했다.
"요 몇년 너무 바빠서 광규 형한테 '결혼 생각할 틈 없다' '힘들어서 집에 혼자 있는 게 좋다'고 해서 그런 얘기가 나온 거예요. 결혼 생각은 오락가락해요. 피곤하게 집에 들어갔을 때 혼자 있고 싶다가도 쉴 때는 누군가 옆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은 일이 많다보니 전자에 가까워요. 어차피 많이 지났고, 사람 만날 기회가 줄어들기도 했고요. 30대 후반엔 무조건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40대 되고부터 새로 인생을 시작하는 느낌이 들어서인지 그렇게 간절하진 않아요."
이서진은 요즘 KBS 2TV '어서옵show(쇼)'를 통해 나영석 PD의 손을 놓고, 새 예능에 뛰어들었다. 이서진은 나영석 PD의 tvN '신서유기2'와 동시간대 경쟁하는 것에 대해 "맞대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간대가 겹칠 뿐"이라고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또 "나영석 PD도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나 PD는 내가 자기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넉살 좋게 말했다.
이서진은 요즘 최대 화두를 묻자 나영석 PD를 떠난 '어서옵쇼'를 입에 올렸다. 인터뷰가 진행된 날은 '어서옵쇼' 첫방송 이틀 전. 그는 "나 PD와 함께였다면 이 정도 걱정은 안 됐을 것 같다"고 방송을 앞둔 솔직한 심정을 털어놨다. 그만큼 이서진과 나영석 PD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특히 이서진은 '꽃할배'들의 여행을 보조하는 '짐꾼'에 대한 강한 애착을 드러냈다.
"선생님 네 분이 여행을 가신다면 당연히 짐꾼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선생님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실까요. 하지만 네 분 멤버가 바뀐다면 안 갈 거예요. 네 분 만큼은 제가 따라 갈거라고 말해놨어요. 짐꾼 욕심이요? 처음엔 짐꾼이 힘들어서 짐꾼 콘테스트를 하자고 제안하기도 했어요. 짐꾼이 아니다 싶으면 바로 집으로 보내고, 다음 대기자를 보내는 게 어떻겠느냐고요. 혼자 가기보다 누군가 데려가는 방법도 생각해 봤고요. (옥)택연이가 괜찮을 것 같아요. 친한 동생이고 미국에서 자랐고 힘까지 좋아서 모든 걸 갖췄죠. 택연이 의사는 물어보지 않았어요. 같이 따라가자고 하면 가야지 어쩌겠어요.(웃음)"
그에게 배우로서 대중에게 어떻게 비쳐지길 바라는지 묻자 특유의 솔직한 답변이 돌아왔다. 그 속에는 '꽃할배'들에 대한 애정과 존경이 내비쳤다.
"그런 생각도 점점 없어지는 것 같아요. 배우는 되레 평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어떤 역할도 무난히 소화할 수 있고, 배우로서 오래도록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겠죠. 평생 연기해오신 선생님들은 뵈면서 평범하고 소박한 성격이 오랜 연기생활을 지탱해온 힘이 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은나리 기자 jenr38@segye.com
사진=한윤종 기자 hyj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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