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6-05-16 18:42:44
기사수정 2016-05-17 09:42:54
청와대·3당 지도부 회동 3일 만에 ‘암초’
지난 13일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3당 원내지도부의 청와대 회동 이후 순항할 것 같았던 여야 협치(協治)가 사흘 만에 ‘암초’를 만났다. 국가보훈처가 16일 올해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불가 방침을 발표하면서 야권이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등은 당장 보훈처장 해임결의안을 제출하는 것을 시작으로 대여 강공을 예고했다. 정부가 끝까지 불가 방침을 고수할 경우 19대 국회의 남은 법안 처리는 물론 20대 국회 원구성 협상에도 적지 않은 후폭풍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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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은 유치원생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의 주인공인 윤상원 열사 묘역에 직접 만든 꽃을 바치고 있다. 광주=연합뉴스 |
20대 총선을 통해 여야 간 소통과 협력을 바라는 민심이 확인됐음에도 보수 지지층의 눈치만 살피는 청와대와 호남 맹주를 놓고 선명성 경쟁에 빠진 두 야당이 서로 자신의 골수 지지층만 바라보는 ‘협치’(狹治)에 빠진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국민의당 천정배 공동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청와대를 향해 “(박) 대통령이 국민들, 특히 광주시민의 간절한 바람을 외면한 것”이라며 “소통과 협치, 국민 통합을 바라는 총선 민의도 저버린 것이다. 광주 학살의 원흉, 신군부 입장에 서서 광주정신을 폄하하고 왜곡해온 극소수 극단적 수구 세력의 손을 들어준 것이나 다름없다”고 각을 세웠다.
전남·광주 지역의 유일한 더민주 당선자인 이개호 비대위원도 이날 비대위 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국민분열을 일으키지 않는 좋을 방법을 찾도록 보훈처에 지시하겠다고 했음에도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할 수 없다면 무엇이 국론 통합 방법인지 박 대통령에게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목청을 높였다.
새누리당은 이번 논란으로 모처럼 찾아온 ‘협치 무드’가 깨질까 전전긍긍하는 기색이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당초 이날 오전 보훈처 결정이 알려지자 “여러 측면을 고려한 것”이라고 두둔했다가, 야당 반발이 심상치 않자 부랴부랴 보훈처에 재고를 요청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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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3당 원내지도부가 지난 13일 오후 청와대 회동에 앞서 서로 손을 맞잡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자료사진 |
청와대는 이번 논란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불가에 대해 별도의 공식 입장을 발표하기보다는 보훈처 결정을 존중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는 특히 박 대통령의 원내대표단 회동 당시 언급도 보훈처에 좋은 방안을 찾아보라고 지시한 것일 뿐 여기에 어떤 의중이 담겨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반응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보훈처가 여러 의견을 듣고 결정을 내린 것”이라며 “보훈처의 공식 발표까지 내려진 상황에서 이를 뒤집는 일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청와대 현기환 정무수석이 전날 심야에 제창 불가 방침을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에게만 통보하고 더민주의 우상호 대표에겐 알리지 않은 것도 반발을 낳고 있다. 우 원내대표는 이날 “청와대는 국민의당과만 파트너십을 만들겠다는 건지 왜 국민의당에만 통보했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박 원내대표는 “제가 아무래도 강하게 3번씩 얘기를 했기 때문에 제게 먼저 얘기를 하고 우 대표에게 얘기하려고 한 것 같다”고 말했지만, 여권 내에서조차 청와대의 일처리가 매끄럽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동진·이우승 기자 bluewin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