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6-05-16 18:22:30
기사수정 2016-05-17 01:12:27
삼성 반도체 진출 때 기술자문 하마다 박사가 보관했던 선물/ 찾아간 양향자 전 상무에 건네
“어느 시점에서 이것을 한국인에게 되돌려줄지 고민해 왔는데,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물려주고 싶었네.”
지난달 20일, 하마다 시게타카(濱田成高·91) 박사는 도쿄의 히가시야마토(東大和)시 자택에서 낙선 인사차 찾아온 양향자 전 삼성전자 상무에게 커피 그릇 세트(사진)를 건네며 이같이 말했다. 한국의 전통 문양이 조각된 은제 그릇 2개와 은수저 2개, 받침대로 이뤄진 고급 세트였다.
도쿄대 전자공학과 출신인 하마다 박사는 일본 통신업체 NTT에서 전무를 역임하고 삼성의 반도체 진출 당시 기술자문을 해준 반도체 전문가로, 지난 20대 총선 광주 서을에서 낙선한 양 전 상무와 28년간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 관계를 유지해온 사이였다.
하마다 박사는 “실망하지 마라”고 양 전 상무를 위로한 뒤 “정치권에 가면 앞으로 중요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될텐데, 이것을 사용하라”고 격려했다.
그런데 하마다가 양 전 상무에게 건넨 건 단순한 커피 그릇 세트가 아니었다. 바로 30여년 전에 고 이병철 삼성그룹 선대회장이 반도체 기술 자문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하마다에게 선물한 것이었다. 양 전 상무는 무게가 만만치 않아 받자마자 ‘귀한 선물’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양 전 상무는 16일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하마다 박사가 이 선대회장으로부터 받은 때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삼성이 반도체 공장을 인수한 1974년과 1983년 삼성전자의 기흥공장 준공 사이로 기억했다”고 전했다.
삼성그룹 등에 따르면 이 선대회장은 1974년 ‘한국반도체’를 인수했지만 반도체 자체 기술이 없어 고민하다가 1982년 고심 끝에 반도체 사업 진출의 결심을 굳혔다. 이때 이 선대회장은 여러 사람에게 자문을 구했는데 하마다도 그 중에 포함됐다.
하마다 박사도 처음에는 업계와 다른 전문가들처럼 “어려울 것”이라고 이 선대회장에게 조언했다. 하지만 하마다는 이 선대회장의 반도체 사업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확인한 뒤에는 “사람이 하는 일이고, 일본도 하는데 왜 한국이라고 못하겠느냐”며 긍정적으로 기술자문을 해줬다고 한다. 이 선대회장은 이후 새 사업을 구상할 때마다 하마다를 찾아 자문을 구하곤 했다고 양 전 상무는 전했다.
이 선대회장은 ‘3년 안에 실패할 것이다’거나 ‘TV도 제대로 못 만드는데 최첨단으로 가는 건 위험하다’ 등 재계의 반대와 냉소를 이겨내고 삼성을 글로벌 1위 반도체 기업으로 키워냈다. 아울러 반도체 산업은 1980년대 이후 대한민국의 주요 먹거리 가운데 하나가 됐다.
삼성전자 기흥공장과 구미공장 등을 헬기로 둘러보기도 한 하마다 박사는 나중에 이 선대회장으로부터 도자기를 비롯한 많은 선물도 받았다. 하마다는 “이 선대회장은 누군가를 만날 때 감사의 표현으로 선물을 하곤 했는데, 참 의미 있게 선물했다”며 “나도 선물을 받고 너무나 감동을 받았다”고 회고했다고 양 전 상무는 전했다.
양 전 상무와 하마다 박사와의 인연도 재밌다.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된 건 이 선대회장이 작고한 1987년 이듬해인 1988년. 당시 삼성에서 반도체 사업에 기여한 하마다 박사와 가타오카 박사를 한국에 초청했는데 양 전 상무가 1주일간 하마다 박사의 통역과 가이드를 맡게 된 것이다.
자식이 없는 하마다 박사와 양 전 상무는 이후 28년간 제2의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처럼 돈돈한 관계를 유지했다. 두 사람은 대한해협을 사이에 두고 수천장의 편지와 연하장, 카드를 주고 받았다. 하마다 박사는 91세임에도 아직 스스로 운전하고 첨단 IT 기기를 사용하는 ‘얼리 어덥터’라고 한다.
양 전 상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조만간 하마다 박사를 만나 이 선대회장과의 추억 등을 함께 공유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의 상무를 역임한 양 전 상무는 최초 고졸 출신의 삼성 여성 임원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김용출 기자
kimgij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