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6-05-26 18:27:32
기사수정 2016-05-27 10:11:32
향후 대권 시나리오는
“자신이 짊어질 짐이라면 피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측 한 인사는 26일 통화에서 전날 반 총장의 내년 대선 출마 시사 발언을 이같이 해석하며 “(출마) 안 하면 모를까, 하려면 그 정도 발언을 해야지”라고 말했다. 반 총장의 대선 출마를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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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26일 제주 서귀포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주포럼 행사에 참석해 안경을 만진 채 생각에 잠겨 있다. 반 총장은 전날 차기 대권 도전 가능성을 시사했다. 서귀포=연합뉴스 |
그러면서 “반 총장이 직접 나서는 형식과 당신이 아니면 도저히 안 되겠다며 사실상 추대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일만 남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친박(친박근혜)·비박계가 죽기 아니면 살기 식의 싸움판에 반 총장이 뛰어들 이유는 없다”고 못 박았다. 사실상의 추대 방식이 아닌 당내 경선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내비친 것이다.
반 총장 대선 출마는 새누리당 친박의 지원만 받아 이뤄지는 게 아니라, 계파를 초월해 당 전체가 공감대를 형성해야 가능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모양새를 갖추려는 경선과 진검승부를 벌이는 선거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고 부연했다.
반 총장 측은 이명박·박근혜 후보 간 사즉생의 전면전이 벌어진 2007년 대선 후보 경선이 아니라 박근혜 후보와 김문수, 김태호 후보 등 간 ‘무늬만 경선’이 치러진 2012년 경선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새누리당의 당내 사정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최종 결심을 하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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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제주도 서귀포시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주포럼에서 반기문 UN사무총장과 황교안 국무총리가 면담하고 있다. 제주=사진공동취재단 |
반 총장이 임기 7개월여를 앞두고 한국을 방문해 대선 출마 시사 입장을 밝힌 만큼 여권은 이에 대한 응답을 내놓아야 할 차례라는 것이다. 여권이 연말까지 당내 사전정지 작업을 통해 필요충분조건을 갖추면 반 총장은 내년 초에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겠다는 의도로 분석된다. 반대로 여당 내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으면 반 총장은 출마의 뜻을 접을 수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반 총장의 대선 출마 여부는 전적으로 여권이 어떤 환경을 조성하느냐에 달렸다는 것이다.
그동안 친박 진영이 여러 경로를 통해 구애를 하자, 반 총장은 이에 화답을 하며 동시에 ‘숙제’를 던졌다고 할 수 있다. 친박 측은 대통령 후보 경선은 당헌에 따라 치러야 한다면서도 반 총장의 대선 후보 영입을 위한 다각적인 방안을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친박 일각에서는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 50대 젊은 후보와 반 총장 간의 경선 등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김무성 전 대표 측 홍문표 사무총장 대행은 “치열한 경쟁이나 선의의 경쟁을 통해 후보로서 다듬어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경선 불가피성을 주장했다.
권력구조 개편 등을 포함한 개헌 논의, 대권·당권 분리 문제도 새누리당의 반 총장 영입 구상과 직접적으로 맞물려 있다.
황용호 선임기자 drago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