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빼든 대통령 vs '재의결' 방패 든 야권… 정국 급랭

20대 국회가 첫걸음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27일 상임위 청문회 활성화를 골자로 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칼(거부권)을 빼들자 야당들은 20대 국회에서 이 법안을 재의결(방패)하겠다고 맞서고 있어 정국이 급랭하고 있다.

화난 국회의장 정의화 국회의장이 27일 오전 국회 로텐더홀에서 열린 제68주년 국회 개원 기념식 도중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청문회 활성화법) 거부권 행사와 관련해 헌법 전문이 담긴 책자를 들어보이며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제원 기자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 3당은 이날 오전 3당 원내대표 간 긴급 전화협의를 갖고 국회법 재의결을 공동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청와대는 거부권 행사 시점이 19대 임기 종료와 맞물려 있어 이 법안이 자동폐기된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야당들은 새 국회에서 재의결할 수 있다고 맞서고 있어 당분간 치열한 법리공방이 예상된다.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 천정배 공동대표, 이상돈 최고위원이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이제원기자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가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제원 기자
야당들은 이날 청와대의 기습적인 거부권 행사를 ‘정치적 꼼수’라며 맹비판했다. 더민주 기동민 원내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19대 국회가 폐회되는 마지막 날에 재의를 요구한 것은 사실상 19대 국회가 역할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이를 악용하는 것”이라며 “꼼수 행정의 극치”라고 꼬집었다. 국민의당 손금주 수석대변인도 “대통령의 해외 순방 기간, 19대와 20대 국회가 연계되는 현시점에 임시회의까지 소집해 가며 거부권을 의결한 의도는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꼼수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황교안 국무총리(가운데)가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임시국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해외순방 중인 박근혜 대통령을 대신해 회의를 주재한 황 총리는 국회법 개정안(청문회 활성화법)에 대해 대통령 재의 요구안을 의결했다. 박 대통령은 에티오피아 현지에서 전자결재를 통해 재의요구안을 재가했다.
서상배 선임기자
야당 지도부는 특히 이번 사태를 청와대 발 ‘협치 기조 붕괴’이자 ‘총선 민심 왜곡’이라며 각을 세웠다. 더민주 김종인 비대위 대표는 이날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2016 한반도 통일 심포지엄’에 참석한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협치하자고 해놓고 저런 짓을 하면 정치가 꼬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도 “(박 대통령이) 내부 일정을 정해 놓고 이러시는 것 같다”며 “박 대통령께서 총선 민의를 심각하게 왜곡 해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야 3당은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강력 반발하면서도 민생·경제문제나 원구성에는 차질이 없도록 하는 ‘투트랙 대응’ 기조를 분명히 했다. 우상호 원내대표는 기자들에게 “민생현안을 뒤로 미룰 수 없다는 입장은 유효하다”고 말했고,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도 “민생경제보다 더 큰 정치는 없기 때문에 투트랙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당 내분으로 국정장악력이 떨어진 청와대가 야당과의 국회법 싸움을 의도적으로 격화시켜 국면전환을 시도하고 있다고 판단해 이에 순순히 말려들지 않겠다는 전략이다.

새누리당 김희옥 혁신비상대책위원장 내정자(가운데)가 2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상견례장에서 정진석 원내대표(왼쪽), 홍문표 사무총장 대행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이제원기자


이번 국회법 개정을 주도했던 정의화 국회의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제68주년 국회 개원 기념식’에서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해 “이것은 국회 운영에 관한 법률에 대해 행정부가 이해할 수 없고 납득할 수 없는 이유를 붙여서 재의를 요구한 것”이라며 “아주 비통하다. 아주 참담하다”고 말했다. 정 의장은 특히 기념사 중간 중간 헌법 책자를 꺼내 들고 허공에 흔들어 보이는가 하면 언성을 높이는 등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김동진 기자 bluewin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