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6-06-09 16:56:35
기사수정 2016-06-11 11:07:37
"고마우면서도 민망하네요. 열심히 하겠다는 말씀밖에 못 드리겠네요.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겠다는 게 제가 지금 상황에서 드릴 수 있는 최선의 약속 같습니다."
김민욱(25) 몬돌키리(
www.mondol-kiri.com) 공동대표의 말이다. 몬돌키리는 폐간판에 쓰이는 천을 뜯어 가방을 만드는 회사다. 산업폐기물을 이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업사이클링(upcycling)’ 업체로 분류된다. 수익과 공익을 두루 담보하는 사회적 기업인 셈이다.
김 대표는 최근 애니 캐릭터 뿌까와 묘&가를 만든 부즈(
www.vooz.co.kr)로부터 400만원을 지원받아 자수까지 박을 수 있는 최신형 공업용 재봉틀을 마련하게 됐다. 사회적 가치는 갈수록 흐려지고 물질적 효용만이 각광받는 요즘, 몬돌키리의 의미는 버려질 운명의 폐간판을 예쁘장한 ‘명품가방’으로 바꾸는 데만 머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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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병 출신의 김민욱 대표가 업사이클링 가방 디자인을 고민하고 있다. |
몬돌키리는 국내 몇 안되는 업사이클링 업체일뿐 아니라 가방 하나가 팔릴 때마다 캄보디아 빈민촌에 망고나무 한 그루를 심는 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 빈민촌은 캄보디아 수도 프놈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언짠 마을이다. 캄보디아 첫 문민정부는 독재정권이 끝나자마자 전국적인 SOC 사업을 펼쳤는 데 ,대부분 언짠 주민들은 당시 나라 발전을 위해 희생된 도시 빈민들이었다.
경남 진주가 고향인 김 대표는 지난해 7월 함께 몬돌키리를 이끌고 있는 구빈회 대표(경남과기대 전자상거래무역학과 동기), 그리고 다른 동기 2명과 캄보디아로 여행을 떠났다. 대학 졸업이 코앞으로 다가온 입장에서 머리도 식히고 앞으로의 진로도 차분하게 고민해보자는 절박함이 컸다.
그런데 앙코르와트 사원 관광 직후 찾았다는 언짠 마을은 솔직히 기분전환보다는 참담함이 더 앞섰다. 김 대표의 처지도 제 코가 석자였지만 3000명 주민 평균 수명이 마흔살이 채 안되고 그곳 아이들 또한 중학교만 마치고 나면 동생들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제 열살도 안된 어린 친구들인데 알게 모르게 가족 생계까지 걱정해야하는 형편이었던 것이다.
같이 갔던 일행도 김 대표와 같은 생각이었다. "우리보다 더 불쌍한 얘들이 있었어."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 일주일 만에 다시 언짠 마을을 찾았다. 능력도, 여유도 없는 처지였지만 그 아이들이 계속 눈에 밟혔다. 뜻이 있으니 길이 보였다. 지방대 출신으로 당장의 취직자리를 알아봐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다른 나라 어린 친구들에게 보탬이 될 수 있는 길이 있었다.
그래서 지난 1월부터 시작한 게 몬돌키리였다. 몬돌키리는 업사이클링 가방 1개를 팔면 캄보디아에 망고나무 1그루를 심는다. 그런데 사업은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현지 주민들도 몬돌키리를 경계했고, 가방을 만들기 위한 천을 구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런데 '진심은 통하더라'고 김 대표는 말한다.
정말 ‘이제는 한계다’라고 자포자기할 즈음 새로운 돌파구가 나타났다. ‘코리아 형’들이 온다는 날이면 언짠 아이들 수십명이 동네 앞으로 마중을 나왔다. "어린 친구들이 이 쓸데없는 간판 가져다 어디다 쓰게!" 했던 진주 어른들은 어느 순간부터 "기특하다"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신다. 가방 물량은 최소 2000개라고 못을 박았던 서울 면목동 ‘사장님’은 "사정이 정 그렇다면 내가 해야지 뭐"라고 툴툴댔다.
물론 이 사람들만 고마운 게 아니다. 몬돌키리가 부즈를 알게 된 것은 페이스북 기반 소셜 기부사이트인 쉐어앤케어(
http://sharencare.me/) 덕이 컸다. 쉐어앤케어 황성진 대표가 몬돌키리 김 대표 이야기를 부즈 김부경 대표에게 전했고 이에 김부경 대표가 400만원을 쾌척하겠다고 화답했다.
쉐어앤케어 기부 방식은 후원사가 '얼마 정도 사회적 공헌을 하고 싶은데 도움이 필요한 곳이 있느냐'고 제안하면 쉐어앤케어가 그에 부합하는 공익 그룹을 찾아 연결해주는 형태다. 그 과정에서 페이스북 '좋아요' 건당 200원, '공유' 1000원 식으로 사회적 여론을 환기시킨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미지가 좋아져서 좋고, 도움이 절실한 그룹은 지원을 받아 좋고, 페북 사용자들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남한테 도움이 됐다는 뿌듯함 때문에 최근 들어 각광을 받고 있는 기부 방식이다. 황 대표는 지난 4월초 몬돌키리 사연을 소개했는데 3주가 채 되기도 전에 목표액이 달성됐다고 말했다.
쉐어앤케어에 앞서 소셜크라우드펀딩 와디즈(
www.wadiz.kr)가 있었다. 좀더 전에는 지역 일간지의 ‘캄보디아에 망고 희망숲 만든다’는 1면 기사가 있었고 또 그 전에는 대학 친구들과 대전 한남대 애니메이션학과 학생들의 ‘재능기부’ 덕을 많이 봤다. 무엇보다 가족들 응원이 컸다고 한다.
김 대표는 "최근에 어머니가 지나가는 말로 ‘네 아버지가 전에 사업에 실패한 적이 있어서 엄마는 정말 내 자식만큼은 사업을 안했으면 했다. 그런데 우리 아들은 아빠랑은 좀 다를 거 같네’라고 말씀해줘서 눈물이 핑 돌았다"고 말했다.
몬돌키리는 여전히 힘들다. 그렇지만 마음만은 행복하다. 성과는 아직도 미흡하지만 진심만큼은 "통하는 것 같다" 싶어서다. 동료가, 가족이, 친구가 그리고 사회까지 응원을 해주고 있다. 김 대표는 요즘 코트라 사회적기업 교육과정을 듣고 있다. 고용노동부로부터는 8000여만원 지원금도 약속받았다.
처음엔 패기로, 치기로 시작했던 일이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뭔가 길이 보이는 것 같다.
"제 좌우명이 ‘경험은 절대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다’예요. 이렇게 말은 하지만 솔직히 처음엔 반신반의했어요. 그런데 조금씩 확신이 생기는 것 같아요. 물론 돈 많이 벌고 싶죠. 그래서 캄보디아에서 창업 아이템을 찾았던 것 같아요."
최근 새 아이템 때문에 서울 봉제공장에 올라온 김 대표는 광화문서 세계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청춘'과 '행복'을 말했다.
"그런데 지금은 약간 생각이 달라졌어요. 결과가 어떻든간에 지금 이순간 내가 스스로 만족스럽고, 떳떳하다면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자산이고 행복 아닌가 싶어요."
송민섭·박윤희 기자
stsong@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