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노무현'도 못 피해간 브로커·법조비리

검사장 출신 홍만표(구속) 변호사, 부장판사 출신 최유정(구속기소) 변호사 등이 연루된 대형 법조비리 사건의 중심에는 이른바 ‘법조브로커’가 있다. 현재 법무부가 중심이 돼 법원·검찰·변호사단체 등이 나란히 참여하는 ‘법조브로커 근절 태스크포스(TF)’를 운영 중인 가운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일찍이 자신의 변호사 시절 경험을 토대로 ‘변호사 전부가 사건 알선 브로커에게 커미션을 주는 관행을 끊어야 법조계 풍토가 달라진다’고 강조한 사실이 알려져 눈길을 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1994년 펴낸 자전적 에세이 ‘여보, 나 좀 도와줘’의 표지. 부산지역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의 노 전 대통령 모습이 소상히 그려져 있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대권에 도전하기 훨씬 전인 1994년 ‘여보, 나 좀 도와줘’(새터)라는 제목의 자전적 에세이를 펴냈다. 이 책은 정계 입문에 앞서 법조인으로 활동하던 노 전 대통령의 모습이 비교적 소상히 그려져 있다. 노 전 대통령은 1974년 제17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사법연수원을 7기로 수료하고 1977년부터 1년 동안의 짧은 판사 생활을 거쳐 1978년 부산에서 변호사로 개업했다.

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 노 전 대통령을 가장 괴롭힌 것이 바로 사건을 소개해주는 브로커들에게 지급하는 소개료였다. 변호사법상 엄연히 금지된 행위이지만 알선료를 주지 않으면 사건 수임이 힘드니 거의 모든 변호사가 사건을 소개하는 브로커에게 일정한 커미션을 지급했다고 한다.

“당시 큰 고민거리 중 하나가 사건 알선 커미션이었다. 법원과 검찰의 직원들, 법조계 주변 경찰관, 교도관, 거기다 전문 브로커들까지 설치며 사건을 변호사에게 알선해주고 커미션을 챙겨 갔다. 점잖은 변호사도 관례화된 액수만큼은 주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다만 특별히 커미션을 더 주고 사건을 유치하는 변호사들만 다른 변호사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정도였다. 나도 관례에 따라 커미션을 주고 있었다.” (‘여보, 나 좀 도와줘’ 본문 중에서)

비록 관행이라고는 하나 노 전 대통령은 브로커에게 소개료를 줄 때마다 항상 속이 편치 않았다고 한다. 그는 “사건을 소개하는 사람이 ‘다른 변호사는 얼마 주겠다는데 여긴 얼마 주겠냐’며 흥정을 걸어올 때면 정말 견디기 어려웠다”면서 “돈이 좀 될 만한 사건을 들고 와 사무장과 흥정을 벌이고, 사무장이 다시 내게 와 이야기를 하는데 명색이 변호사라는 게 꼴이 말이 아니었다”고 털어놨다.

노무현 전 대통령(왼쪽)과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노 전 대통령은 자전적 에세이에서 “1982년 문재인 변호사와 동업하게 된 것을 계기로 법조브로커에게 사건 소개료를 지급하던 관행을 끊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결국 알선료 지급을 중단했다고 한다. 요즘 차기 대권 후보로 거론되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만남이 결정적 계기로 작용한 점이 무척 흥미롭다.

“1982년 연수원을 졸업한 문재인 변호사와 동업을 시작하면서 커미션을 일체 끊어 버렸다. 새로 시작하는 후배 앞에서 차마 추한 꼴을 보여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역시 사건 수임이 현저히 떨어져 버렸다. 그나마 쉽고 돈이 되는 사건은 없고 일만 어려우면서 변호사 수임료는 적은 일만 들어오곤 했다.” (‘여보, 나 좀 도와줘’ 본문 중에서)

영화 ‘변호인’의 한 장면. 배우 송강호가 젊은 변호사 시절의 노무현 전 대통령 역을 맡아 실감나는 연기로 1000만 관객 돌파에 성공했다.
배우 송강호가 주연을 맡은 영화 ‘변호인’에 나오듯 1980년대 초반 노 전 대통령은 부산지역에서 속칭 ‘잘 나가는’ 변호사였다. 특히 조세 관련 사건에서는 발군의 기량으로 높은 승소율을 달성해 제법 많은 돈을 번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그도 소개료 지급을 중단한 뒤 한동안 ‘사건 기근’에 시달렸다. 노 전 대통령은 “‘잘한다’는 얘기는 듣는데 돈은 없고 몸만 고달팠다”며 “담당자가 커미션이 없어지자 변호사를 바꿔 기존 거래처마저 하나 둘 떨어져 나가면서 정말 밥을 굷게 될 지경이 돼버렸다”고 그 시절을 회상했다.

노 전 대통령은 어떻게 위기를 모면했을까. 그는 의뢰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영화 ‘변호인’이 묘사한 것처럼 수임한 모든 사건에서 성심성의껏 변론하는 태도를 보이며 ‘잘하는’ 변호사를 넘어 ‘믿을 수 있는’ 변호사로 거듭났다.

“대신 신용을 얻어 보자고 마음먹고는 어쩌다 큰 사건이 걸리면 온 정성을 기울여 사건을 처리했다. 그걸 상대방 담당자가 알도록 하기 위해 때론 상담 시간을 밤 시간으로 정해 집으로 불러들여 같이 밤샘을 하며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열심히 일하는 변호사란 걸 상대방에게 인식시켜주곤 했다. 고되고 힘들던 때였지만 그로 인해 나는 변호사로서 확실히 자리잡을 수 있었다.” (‘여보, 나 좀 도와줘’ 본문 중에서)

이 책을 통해 1970∼1980년대에도 브로커를 통한 사건 수임, 그리고 브로커가 챙기는 거액의 소개료, 그로 인한 변호사 수임료의 전반적 상승 등이 우리 법조계의 보편적 풍경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글의 말미에 노 전 대통령은 “나만 커미션 안 준다고 해서 법조계의 풍토가 달라질 리는 없었다”고 결론지었다. 법조브로커 근절을 위해선 모든 변호사가 일치단결해 브로커와의 거래를 단호히 끊는 것 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음을 일깨운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