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6-06-15 13:58:20
기사수정 2016-06-15 13:58:19
올해 초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방위사업청이 한국형전투기(KF-X) 개발 사업에 착수한 이후 KF-X에 대한 관심은 세간에서 조금씩 멀어지는 분위기다.
하지만 KF-X 탑재 장비 선정을 놓고 물밑에서는 치열한 경쟁이 이어지고 있다. 다기능위상배열(AESA) 레이더 시제 제작 업체와 다기능시현기(LAD) 제작업체로 한화탈레스가, 엔진 협력업체로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이 선정되면서 핵심 장비들은 '교통정리'가 이뤄지고 있지만 방산업체들에게는 여전히 매력적인 시장이 KF-X다.
서방측의 신형 전투기 개발 사업이 지지부진한데다 서유럽의 국방예산도 감소세를 이어가면서 미국과 유럽 방산업체들은 국방비 지출이 늘어나는 아시아 시장에 주력하는 분위기다. 그 중에서 KF-X는 가장 큰 전투기 개발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해외 방산업체들의 관심이 적지 않다. 이를 잘 활용하면 핵심기술 확보도 용이해질 수 있다는 측면에서 경쟁 체제를 촉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
|
| 14일 서울 공군회관서 열린 제9회 민군 협력 무기체계 발전 워크숍에서 원인철 공군참모차장이 미국 MQ-9 무인기를 소개받고 있다. 공군 제공 |
◆ 공군 세미나에 국내외 방산업체 대거 몰려
지난 14일 서울 대방동 소재 공군회관에서 열린 '제9회 민군 협력 무기체계 발전 워크샵'은 이같은 추세를 단적으로 드러냈다.
17개 업체 32종의 장비가 소개된 이번 워크샵에서는 KF-X에 탑재 가능한 항공전자장비와 무장들이 대거 전시됐다.
이스라엘 라파엘사는 '파이슨(Python)-5' 'I-더비(Derby)' 등 공대공 미사일과 스파이스 (SPICE) 250 공대지 유도폭탄을 소개했다.
2003년 처음 등장한 파이슨-5는 사거리 20㎞의 단거리 공대공미사일이다. 기존 공대공 미사일이 표적을 점으로 인식하는데 비해 파이슨-5는 표적과 그 배경을 영상으로 인식할 수 있어 목표식별능력이 크게 향상됐다. I-더비는 사거리 50㎞ 내외인 중거리 공대공미사일로 1990년대 등장했다. 전자전 공격에 대응할 수 있지만 데이터링크 능력이 없다는 단점이 있다. 개량형인 I-더비 ER은 사거리가 100㎞로 이중펄스 로켓추진기관과 액티브 레이더가 새로 탑재돼 기존의 단점을 해소했다.
F-15/16 탑재가 가능한 스파이스 250은 2006년 레바논 전쟁과 2008년 가자지구 침공 당시 이스라엘군이 사용한 스파이스 유도폭탄을 소형화한 것이다. 크기는 줄어들었지만 위력은 강화된 신형 탄두와 데이터링크 시스템을 탑재한다.
유럽 방산업체 MBDA는 미티어(Meteor) 중거리 공대공미사일을 소개했다.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램젯’ 엔진을 탑재해 공대공미사일 중 교전 영역이 가장 넓다. 사거리 120∼130㎞, 속도는 마하 4에 달한다.
최첨단 능동 레이더탐색기, 데이터링크 등을 구비해 광범위한 표적을 상대로 한 초정밀 공격능력을 갖추고 있다. 근접 및 충격신관을 장착한 폭풍파편형 탄두를 탑재해 파괴력도 높였다.
미국 노스롭 그루먼은 다기능위상배열(AESA)레이더를 선보였다. KF-16 성능개량 사업에서 AESA 레이더를 공급하는 노스롭 그루먼은 F-35 외에 공군이 향후 도입할 다른 전투기에도 적용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영국 BAE 시스템스는 ALQ-239 통합 전자전장비와 APKWS 로켓을 소개했다. ALQ-239는 각각의 전자전 장비를 통합해 기체 내부에 탑재하는 장비로 AESA 레이더와 호환된다. APKWS는 2.75인치 로켓에 레이저 유도체계를 더한 것으로 올해부터 전투기에 사용될 예정이다.
|
|
| 14일 열린 제9회 민군 협력 무기체계 발전 워크숍에 참석한 관계자들이 업체로부터 무기체계를 소개받고 있다. 공군 제공 |
◆ 서유럽 국방비 줄어들자 아시아 시장 관심 높아져
200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항공무기시장은 미국 보잉과 록히드마틴이 장악하고 있다는 인식이 강했다. CN-235 수송기 등 일부 무기체계에서 유럽제가 도입됐지만 미국 업체로부터 구입하기 어려운 무기들을 보완하는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수년전부터 이러한 인식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 독일-스웨덴 합작회사가 개발한 '타우러스' 장거리 공대지미사일과 유럽 에어버스사의 A330MRTT 공중급유기를 우리 공군이 도입하면서부터다. "한국군도 유럽제 무기에 관심을 보인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한국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던 MBDA를 비롯한 유럽 업체들의 발걸음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서유럽 국가들의 국방비 지출이 감소세인 것도 한 원인이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국방비 지출은 1조6700억달러(1923조8400억원)로 전년 대비 1% 증가했다. 서방국의 국방비 지출은 줄어들었지만 동유럽, 아시아, 중동 지역의 긴장 악화로 국방지출이 늘어난 데 따른 것이다.
국방비 지출이 감소하면 무기 연구개발 프로젝트도 위축된다. 에어버스사를 비롯한 대형 체계통합업체는 여력이 버틸 수 있지만 장비나 무장을 납품하는 업체들은 생존의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는 해외 시장을 개척해야 하지만 전투기 같은 고난이도의 무기를 개발할 능력과 의지를 갖고 있는 나라는 많지 않다. 그런 측면에서 유럽보다 기술 수준이 낮지만 개발 의지와 예산은 충분한 한국의 KF-X 프로젝트는 해외 항공장비 전문업체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많아 놓칠 수 없는 기회다.
KF-X의 경우 상당히 높은 수준의 국산화율을 달성할 계획이다. 하지만 부족한 핵심기술을 개발하려면 해외 업체와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유럽 업체들의 한국 진출이 활발한 상황을 잘 이용하면 우리에게 필요한 핵심기술 확보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KAI와 방사청은 내년 9월까지 KF-X 기본 설계를 마무리하고 2019년 1월까지 상세 설계를 끝낸 뒤 이를 토대로 KF-X 시제기를 제작할 계획이어서 해외 업체들의 활동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