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6-06-15 15:01:00
기사수정 2016-06-15 15:17:35
여자프로농구(WKBL)에서 할머니가 한국 사람이라고 주장하며 ‘해외동포 선수’자격으로 한 시즌 동안 부천 KEB하나은행에서 뛴 첼시 리(27). 본인과 부친의 출생증명서가 조작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여자농구계 후폭풍이 거세게 몰아칠 전망이다. 피의자인 첼시 리와 에이전트 A씨와 B씨가 소환에 불응해 기소 중지 상태지만 관련 서류가 위조로 드러난 만큼 징계가 불가피해졌다. ‘희대의 사기극’에 놀아난 WKBL과 KEB하나은행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주장이 나온다.
검찰 수사에 따르면 첼시 리는 한 시즌을 ‘부정 선수’로 뛴 셈이다. 만년 하위팀에 머물던 KEB하나은행은 첼시 리를 영입하면서 외국인 선수 2명이 동시에 뛰는 효과를 본 덕에 지난 시즌 정규리그와 플레이오프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전 경기(35경기)를 출전한 첼시 리는 평균 15.17점10.4리바운드, 0.9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첼시 리는 등록 선수 전체 공헌도에서 1084.65점으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한 만큼 팀과 리그에 끼친 영향력이 지대했다. 해외동포 선수 자격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국내 선수와 동등한 자격이 주어진 첼시 리는 지난 시즌 신인왕과 득점상, 리바운드상 등 6관왕에 올랐다.
하지만, 첼시 리가 부정 선수로 뛴 사실이 밝혀지면서 지난 시즌 그의 기록은 모두 물거품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첼시 리 서류 조작은 시즌이 끝난 뒤 밝혀졌기 때문에 WKBL 제재 규정에 명확히 들어맞는 내용은 없다. 하지만 WKBL은 오는 20일 재정위원회를 열어 첼시 리와 KEB하나은행 징계 수위를 결정할 예정이다. 양원준 WKBL 사무총장은 15일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구단과 연맹은 4개월에 걸쳐 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동원해 검증했다”며 “한국에서 관련 서류를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을 다 했기 때문에 외국과 타 종목 사례를 찾아봐 징계 수위를 결정하겠다”고 설명했다.
징계 수위를 최대치로 할 경우 첼시 리가 수상한 6관왕 박탈은 물론, KEB하나은행이 치른 전 경기 몰수패까지 가능하다. 그러나 몰수패 처리가 되더라도 스포츠 토토 배당금이 반환되지는 않는다. 국민체육진흥공단 체육진흥투표권 약권에 따르면 ‘투표권 적중결과를 발표하고, 환급이 개시된 이후에는 경기단체의 경기결과가 번복되거나 취소(심판의 오심 등으로 인한 제소 등) 되더라도 투표권의 적중결과는 변경되지 아니하며, 케이토토는 어떠한 경기결과의 변경에도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고 명시돼 있다.
특정 에이전트와 외국인 선수에게 한 시즌을 놀아난 만큼 WKBL의 책임도 피할 수 없다. WKBL은 다른 해외 동포 선수들이 입단할 때는 가족관계증명서를 모두 받았지만 첼시 리가 들어올 때는 받지 않았다. 첼시 리의 양친이 모두 사망했고, 다른 가정에 입양됐기 때문에 첼시 리와 그의 아버지 출생 증명서 그리고 할머지인 현숙 리의 사망확인서를 통해 첼시 리 혈통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초 규정에 명시된 대로 가족관계증명서를 받았다면 문제가 발생할 여지를 막았을 것이라는 의견도 제기된다.
KEB하나은행 측은 아직 재판이 남은 만큼 미국에 체류중인 에이전트 A씨를 만나 소명을 들을 계획이라고 전했다. KEB하나은행 관계자는 “조만간 외국인 선수 영입을 위해 박종천 감독과 함께 미국에 갈 예정”이라며 “미국에서 에이전트들을 만나 사실 관계여부를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KEB하나은행 측은 에이전트 A씨 등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WKBL은 문제가 된 해외동포 선수 규정을 손질하겠다고 밝혔다. 양 사무총장은 “문제가 발생한 만큼 추후 이사회를 열어 해외동포 선수 규정 변경을 안건에 올려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형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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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WKBL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