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이야기’ 펴낸 미술사학자 양정무 교수
요즘 미술책 한 권이 화제다. 출간 한 달 만에 3만부가 팔려나가 출판계를 놀라게 했다. 미술책으로선 초베스트셀러나 다름없다. 미술사학자 양정무(50) 교수가 쓴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이야기’(사회평론)를 두고 하는 말이다. 출판사 대표가 직원들을 대상으로 양 교수의 미술사 특강을 마련한 것이 계기가 돼 책으로 펴내게 됐다. 치밀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 구어체 형식이 독자들을 쉽게 다가서게 만들고 있다. 출판사 직원들을 이미 매료시킨 강의 내용을 책으로 펴낸 것이 주효했다. 물론 미술사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런던유니버시티 칼리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의 해박한 지식이 바탕이 됐다.
“런던에 체류하는 지인들의 요청으로 미술관 가이드 아르바이트를 한 것이 책의 씨앗이 된 것 같다. 당시 미술사 그룹 특강도 병행했다.”
그는 유학 시절 도서관보다 박물관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미술관, 박물관 가이드를 가장 재미있게 하는 학생으로 이름을 떨쳤다. 그런 이력들이 결과적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미술사학자의 길을 걷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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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무 교수는 “누구나 배우지 않아도 그림을 그리고, 지식이 없어도 미술 작품을 보고 느낄 수 있기에 미술은 원초적이고 본능적”이라며 “하지만 미술의 역사는 그 자체가 인류 역사라고 할 만큼 길고도 복잡한 길을 걸어왔기에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제원 기자 |
“60대 남성이 아내가 보던 책을 뺏어 단숨에 읽어 내려 갔다는 얘기도 들었다. 나로서는 가장 고무적인 소식이다.” 사실 출판사 대표들도 책 기획의 모범 사례로 그의 책을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고 있을 정도다.
“우리는 서양미술에 대한 이해의 역사가 매우 짧다. 본격적인 탐구는 1980년대 후반 서양미술사학회가 태동하면서 시작됐다.”
요즘 미술사학자들은 우울하다. 대학 구조조정의 바람을 타고 점점 설자리가 줄어 들고 있기 때문이다. 뿌리도 내리기 전에 흔들리고 있는 형국이다.
“미술사는 인문학의 꽃이다. 세계를 지배했던 나라들에서 왜 미술사학을 중시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미술시장은 돈과 함께 움직였다. 파리가 그랬고 런던과 뉴욕이 그랬다. 요즘엔 아시아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는 중이다.
“이런 호기를 놓치지 않으려면 토양을 마련해야 한다. 미술사학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중국과 일본을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
그는 서양미술문화가 오랜 세월 축적되어 전개된 점을 주목한다. 전통과 혁신이 나란히 다이내믹하게 전개된 역사라는 것이다. 경계가 분명하니 고민도 제대로 할 수 있는 여건이었던 셈이다.
“한국은 서양의 전통(보수)과 혁신(진보)을 ‘서양이라는 한 덩어리’로 받아들여 모두를 진보적인 새로운 것으로 수용했다. 여기에 일본의 식민지배가 사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는 이 같은 현상을 체인점 대리점에 비유했다. 서구에서 새로운 것이 들어오면 뭔가 하려던 것도 그것으로 바꿔 버리는 꼴이다. 대리점이 체인점 본사에 따르는 이치다.
“그나마 지난 한 세대의 민주화와 산업화의 성공적 성과는 희망이 되고 있다. 미술도 그 같은 가능성이 있다.”
그는 다행히도 한국 작가들의 질과 양은 세계적 수준이라 했다. 단지 미술사학자 등이 세계미술사 맥락에서 한국 작가들을 제대로 조명하고 소개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 안타깝다는 것이다.
“한국은 작가와 미술시장이 같이 크지 못하고 있는 것도 큰 문제다. 작가의 책임이라기보다 자존감이 부족한 미술 향유층 탓이다.”
실제로 요즘 큰손들은 외국작가들만 선호하고 있다. 그는 단색화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아류 콤플렉스에 엉뚱한 미학적 변명만 늘어 놓고 있다. 작가들이 모두 ‘신선’인 양하고 있다.” 그는 단색화 붐을 이어가기 위해서 평론가나 이론가의 섬세하고 과감한 논리 개발이 절실하다고 했다.
“문화는 흘러오고 흘러 가는 것이다. 어차피 본류가 아류가 되고 아류가 본류가 되는 순환구조다.”
그는 단색화의 서구 모노크롬 아류 논쟁은 한국미술의 변명만 낳게 된다고 말했다. 어차피 제3세계권의 문화수용 방식 차원에서 바라보면 세계미술의 또 하나의 모습이라는 점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한국미술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어필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야 한국미술의 존재감이 부각된다.”
이를 위해 그는 국전 시대의 아카데미즘 미술과 민중미술의 재조명이 절실하다고 했다.
“19세기 프랑스에서 인상파가 풍미한 시절에도 주류는 아카데미즘 미술이었다. 신주류와 주류는 그렇게 나란히 경쟁관계를 유지하며 풍성한 미술을 만들었다. 민중미술은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 속에서 꽃핀 인권과 평화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프로모션할 수 있다.”
그는 강한 저항의 민중미술과 대비되는 단색화에서는 현실도피적 나르시시즘 미학을 본다. 이런 것들이 한국미술이 세계미술로 안착하기 위한 스스로의 가치 증명 작업이라는 것이다.
“서양미술은 그리스로마미술의 재현 내지 극복의 방식으로 전개돼 왔다. 우리는 불행히도 우리의 고전을 잃어버렸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20세기 한국미술이 시작부터 기존 전통 미술을 비판하고 해체하는데 그 목적을 두었기 때문에 아카데미즘미술은 주류에서 사라지게 만들었다는 얘기다. 자연스럽게 진보적이고 실험적인 작업을 하는 이들이 전통과 혁신의 자리 모두를 꿰차는 사태가 벌어졌다. 결과적으로 비평가들조차 한숨짓게 할 만큼 한국미술은 혼란스러워졌다.
“분서갱유된 아카데미즘 미술의 복권이 필요하다. 한국미술의 풍부한 자원으로서 지금이라도 재조명돼야 한다.”
그는 미술사학자로서 한국미술에 대한 논쟁의 축을 만드는 것이 사명이라고 했다.
“엄숙주의에서 벗어나 작품에 대한 호불호를 명확히 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형이상학적 평론으로 비평무용론이 제기되는 것은 작가에게도 손해가 된다. 평론이 작가의 나침판이 되기 위해선 미술사학자와 인문학자, 큐레이터 등이 적극적으로 다양한 평론의 시각을 보여줘야 한다.”
분명 중국을 중심한 아시아로의 자본 이동은 한국미술에 기회가 되고 있다. 한국미술의 내적 성찰이 절실한 시점이다. 한국미술의 가치를 공유하기 위한 소통은 미술 향유자들에게 자존감을 갖게 할 것이다. 양 교수의 대중과의 소통작업도 같은 맥락이다.
“17세기 네덜란드 미술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네덜란드는 이 시기 남북으로 분리되었다는 점, 주변 강대국으로부터 정치적 영향뿐만 아니라 문화적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러한 혼란한 상황 속에서 경제적 급성장을 통해 새로운 미술을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지금 우리나라 미술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17세기 네덜란드의 명작을 말할 때 렘브란트의 1644년작 ‘야간순찰대’를 빼놓을 수 없다. 당시 네덜란드는 미술시장의 붐으로 일반 서민도 그림을 사고팔았다는 기록이 전할 만큼 미술 제작과 유통이 활발했던 시기였다. 수많은 미술작가들이 상당량의 미술작품을 남겼다. 한 연구에 따르면 1580∼1800년간 네덜란드 공화국에서 약 700만점의 회화 작품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양 교수는 한국미술사를 다시 쓸 것을 제안한다. 그동안 우리는 눈의 시선을 찬양해 왔다. 인류 문명의 위대함이 눈에 의해 인도되었다면, 그러나 이제는 역으로 인간 눈이 갖고 있는 한계를 통해 문명의 사악함을 되짚어 봐야 할 것이다. 본 것을 자기와 다른 것으로 만드는 타자화, 부분에 머물 수밖에 없으나 부분을 통해 전체를 본 것처럼 만드는 허위성은 문명의 폭압적인 욕망 속에 눈이 자리하고 있다고 말한다. ‘모든 시선은 관음적이다’라는 성급한 일반화도 쉽게 맞받아치기 어려울 정도로 이제 시선의 사악화는 부정할 수 없다.
“한국 미술의 독자성을 말하는 것은 한국적 미감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인류 시선에 대한 다층적 해석이 여기에 얼마나 담겨 있느냐를 말하는 것이어야 한다. 서구의 스타일에 우리의 시선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에 대한 진정성을 통해 인류 시선의 비극적 서사를 냉철하게 대면하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한국예술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양정무 교수는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미술사를 가르치고 있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