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문화재] 백제시대 화장실에 숨겨진 비밀

기생충은 다른 생물에 의존하여 생활하는 생명체다. 생존을 위해 숙주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사람만큼 기생충에게 편한 장소를 제공하는 숙주는 없다. 요즈음에는 기생충학자들의 부단한 노력과 청결한 화장실 덕분에 기생충들이 우리 몸속에서 예전처럼 왕성한 활동을 하지는 못하지만 여전히 우리 몸 속에 기생충은 존재할 수 있다. 

2004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전북 익산 왕궁리 유적(사적 제408호)에서 특이한 백제시대 유구(사진)를 발굴했다. 처음에는 지하 저장고, 쓰레기 창고 등 무언가를 모아두었던 유구로 보았다. 그런데 유구 안에서 뒤처리용 막대기가 나오면서 화장실일 수 있다는 의견이 모아졌다. 연구소는 뒤처리용 막대 외에 유구가 화장실이라는 것에 대한 과학적 증거를 찾아야 했다.

백제 시대는 지금보다 더욱 풍부한 기생충 천국이었을 것이라는 것은 여러 문헌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유구가 화장실이라면 기생충알이 오랜 시간 보존되어 있을 것으로 추측했다. 그러나 기생충은 토양에도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기생충알이 많이 나온다는 사실만으로 화장실이라고 확정할 수는 없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대변에서 나오는 물질이 존재해야 하는 점이었다. 그래서 사람의 대변에서 찾을 수 있는 ‘코프로스타놀’(Coprostanol)이라는 콜레스테롤을 찾았다. 실험 결과 코프로스타놀이 다량으로 나왔고, 기생충 중 편충의 알이 다수 확인되었다. 이렇게 처음에 생각했던 화장실의 조건이 과학적으로 증명됐다.

왕궁리 유적지에서 확인된 백제시대 화장실은 뒤처리용 막대기와 기생충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는 신라시대, 고려시대 등 다양한 시대의 화장실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 선조들의 삶 속에는 부엌 문화와 함께 화장실 문화도 반드시 존재했다. 화장실 문화 속에 숨겨진 조상들의 비밀을 찾아내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폭을 넓힐 수 있기를 기대한다.

서민석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