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6-07-03 18:38:25
기사수정 2016-07-04 09:22:52
[암 이후의 삶] 홀로 싸우는 사람들 / 끝나지 않는 아픔
“요즘 항암제는 잘 나온다고 해서 초기에는 남편이랑 농담까지 주고받으면서 치료를 시작했어요. 자살을 생각하게 할 만큼 후유증이 심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2년 전 이맘때 이윤희(37)씨는 샤워 중 가슴에 멍울이 만져져 병원을 찾았다가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8살, 6살밖에 안 된 아이들 걱정에 눈앞이 캄캄했지만 다행히 ‘1기’라는 사실에 용기를 냈다. 젊으니까 눈 딱 감고 치료하면 괜찮겠지 싶었다.
수술 3주 후 항암치료가 시작됐다. 지금은 약이 좋아 고통이 덜하다는 얘기에 안도한 것도 잠시, 항암제를 맞자 상상 이상의 메스꺼움에 속이 뒤집혔다. 두 차례 항암치료에 물 한 모금도 마실 수 없는 지경이 됐다.
병원에서 약을 바꾸자 이번에는 살을 에는 듯한 근육통이 시작됐다. 의사에게 살려 달라고 애원했지만 “항암치료가 원래 힘드니 이겨내야 한다”는 말뿐이었다.
|
이윤희씨는 유방암 치료 이후 원인 모를 근육통으로 수없이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이씨는 “아플 때 찍은 거의 유일한 사진”이라며 링거를 맞고 있는 손 사진을 보내 왔다. 이윤희씨 제공 |
그렇게 항암치료에 이어 지난해 1월 방사선치료를 마친 그는 병원 매뉴얼대로라면 정기적으로 추적관찰만 받으면 될 정도로 건강이 호전됐어야 했다. 그러나 근육통은 이씨를 놓아주지 않았다.
“하루 종일 몽둥이로 두들겨 맞고 온몸의 뼈가 부러지는 느낌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잘 때도 헛소리를 하다 도저히 못 참겠으면 응급실부터 찾았다. 제대로 입원 진료를 받고 싶었지만 암 후유증만으로는 입원실 잡기가 무척 어려워 응급실을 거쳐 입원해야 했다. 그래봐야 모르핀 주사를 맞는 게 전부였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다. 어린 두 아이가 지켜보는 앞에서 이씨는 고통에 신음하며 누워있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결국 근육통에 덤으로 얹어진 우울증과 불면증은 갈수록 심해졌다.
“‘우리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못 해주고 아픈 모습만 보여줄 바에야 차라리 없어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더라고요.”
클릭하면 큰 그림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때부터 우울증과 불면증 약을 처방받아 복용했다. 진통제도 한 가지로는 효과가 없어서 4종을 동시에 삼켰다. 위장 보호와 소화불량 해소를 위한 약까지 먹게 됐다.
이씨는 “약이 약을 불러 나중에는 한꺼번에 8가지 약을 먹게 됐다”며 한숨을 지었다. 급기야 통증을 줄이는 부교감신경차단술을 두 차례 받았지만 소용없었다. 이 와중에 유방암뿐 아니라 난소암을 유발할 수 있는 유전자가 있다는 검사 결과가 나왔다.
“일가친척 누구도 암에 걸린 사람이 없는데 하필 제게 그런 유전자가 있다니 원망과 좌절감만 쌓이더라고요.”
|
이윤희씨가 유방암 치료 이후 원인 모를 근육통을 겪으며 처방받은 약. 이씨는 8가지 약을 한꺼번에 복용하기도 했지만 별다른 약효가 없었다고 한다. |
병원에서는 난소암은 발견되는 순간 말기라며 난소 제거 수술을 권했다. 간단한 수술이었지만 이씨는 또 다른 후유증을 겪을까봐 거부했다. 난소를 제거하면 생리가 끊기고 근육통과 손발저림 등의 갱년기 증상이 나타난다고 들어서다.
이씨는 “난소암은 초기 발견이 어렵다는데도 수술 후유증이 더 두려웠다”며 “근육통 외에 어떤 부작용이 생길지 모르고 난소 제거도 어차피 예방 차원인 만큼 그냥 스스로 알아서 예방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털어놨다.
근육통의 악몽은 지난해 가을 참여한 암 극복 힐링캠프를 통해 서서히 지워졌다.
암 생존자라는 연결고리 하나만으로 모인 사람들끼리 속내를 털어놓고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불안감도 누그러졌다. 특히 임상심리 전문가를 통해 자살 생각이 들 때 사고를 전환하는 법, 복식호흡과 명상을 하며 심리적 안정을 찾는 방법 등을 배운 게 도움이 됐다. 이렇게 매주 두 차례씩 6주간의 프로그램을 마칠 때쯤 신기하게도 근육통이 잦아들었다. 아직도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근육통도 남아있지만 가벼운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됐다. 이씨가 환자 개개인의 상황에 무심한 기계적인 진료에 크게 실망한 이유이다.
“암 진단과 치료 과정에서 누구도 제 몸과 마음 상태를 살펴주지 않는 점이 가장 힘들었어요. 치료가 잘 끝났다는데 왜 이렇게 오래도록 아픈지,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클릭하면 큰 그림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씨의 경험은 암 진단과 치료, 말기암 환자의 호스피스 쪽에 치우친 우리나라 암 관리 체계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충북대병원 박종혁 교수(예방의학)는 “암이 사형선고나 다름없던 시대와 달리 암 치료율이 70%까지 육박한 지금은 환자들의 치료 이후 삶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암 생존자 문제를 더 이상 당사자에게만 맡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특별기획취재팀:윤지로·김유나·이창수 기자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환자들의 이름은 가명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