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도난 당하고 망가지고 원위치도 몰라… 위태로운 ‘소재문화재’

청와대 안에는 '난민 미남불'이 있다?/ 폐사지 5400곳 중 110곳만 문화재 지정 / 문화재청 모니터링 전국 248곳에 불과 / 야외 문화재 20%는 망실·원위치 불명 / 관리 어려워 일부는 불가피하게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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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사지(廢寺地)는 ‘비움의 미학’, ‘상상의 공간’이니 하는 수식어와 함께 여행지 혹은 답사지로 각광받고 있지만 문화재 관리·보존의 관점에서 보면 문제가 많은 공간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폐사지의 상당 부분이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폐사지가 훼손되는 것은 것은 물론 소재문화재(폐사지에 있거나 있었던 문화재)가 도난을 당하거나 옮겨지는 게 예사다. 2010∼2014년 불교문화재연구소의 조사 결과 지상에 있는 소재문화재 5건 중 1건은 원래 있었던 곳을 모르거나 잃어버린 것으로 나타났다.

경주 황룡사지 전경 게티이미지뱅크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인 폐사지·소재문화재


불교문화재연구소가 2010∼2014년 ‘폐사지 기초현황 조사’를 잠정 집계한 결과 야외에 노출되어 있는 소재문화재는 6884건에 이른다. 이 중 폐사지 내에 있는 것은 3917건이다. 나머지 2967건은 원래의 위치에서 벗어나 있다. 소재문화재의 구멍난 관리실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게 ‘망실’ 954건, ‘원위치 불명’ 404여건이다. 전체 6884건의 19.7%에 해당하는 수치다.

망실 사례를 들여다보면 소재문화재 관리가 얼마나 허술한지가 드러난다. 여수 죽림리사지 석조비로자나불상은 안심사 인근의 리조트 주차장 근처에 있었으나 2012년 5월 이후 행방이 묘연하다. 안심사가 이전되면서 없어진 것으로 보고 됐지만 안심사는 불상을 두고 갔다고 하고, 리조트에서는 안심사 이전 후 불상도 없어졌다고 하고 있다. 불상의 소유 주체는 여수시이지만 관리주체가 명확하지 않아 발생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화성리 승탑처럼 원래의 위치를 알 수 없는 경우는 문화재의 성격, 특징을 규명하기가 힘들어진다는 점에서 가치가 훼손된다. 강원도 인제의 갑둔리사지에는 오층석탑 한 기가 서 있다. 석탑이 있으니 절터이겠거니 하는 건 추측일 뿐 전문가들은 석탑이 서 있는 곳을 폐사지로 보기에는 장소가 협소하다는 의견을 보인다. 게다가 석탑 이외에는 폐사지라는 걸 증명할 유구, 유물이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관련 문헌기록도 없다. 석탑에 글이 새겨져 있어 조성시기 등을 알 수는 있으나 석탑의 정체는 명확치 않은 셈이다.

문화재청 집계에 따르면 전국의 폐사지는 5400곳. 이 중 사적(38건), 기념물(65건), 문화재자료(7건) 등에 올라 일정한 관리를 받고 있는 곳이 110건이다. 국가지정·시도지정에 오른 1035건의 소재문화재도 일단 관리시스템 안에 들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문화재청은 또 소재문화재의 도난, 훼손 사례가 빈발하자 폐사지 248곳을 정해 모니터링, 일상 관리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 모두를 합쳐도 폐사지, 소재문화재의 전체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한 폐사지 전문가는 “비지정 폐사지, 소재문화재를 훼손하거나 손을 대도 제재를 할 방법이 마땅찮은 게 현실”이라며 “특히 사유지에 있는 폐사지는 관리가 힘들다”고 지적했다.

◆갈등의 불씨, 고향 떠난 소재문화재


청와대 한쪽에 불상이 있다. 생김새가 단정해 ‘미남불’이라 불리기도 했던 통일신라시대 유물이다. 불상의 고향인 경북 경주시 도지동은 통일신라 때 조성된 ‘이거사’(移車寺)터로 알려진 곳. 1913년 일본인들이 불상을 빼내간 뒤 절터는 경작지로 변해갔고, 지금은 석탑 부재가 어지럽게 널려 있다. 불상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면 찾는 이 드문 쓸쓸한 절터의 신세는 면했을까. 경북도 일각, 불교계에서는 청와대 불상을 이거사지로 돌려놓기를 요구하고 있다.

폐사지를 벗어난 소재문화재는 반환 여부를 두고 갈등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물론 이전된 소재문화재 2900여건 모두를 두고 힘겨루기를 하는 건 아니다. 박물관·미술관, 공공시설 등에 있는 유물 중에는 폐사지에 두고서는 제대로 된 관리가 안 돼 불가피하게 이전된 것도 많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 불교계가 폐사지 활용, 보존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주목도가 높은 유물을 중심으로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강원도 원주 법천사지에 있었던 지광국사탑(국보 101호)이 대표적인 사례다. 고려시대 최고의 탑으로 꼽히는 이 석탑은 일제강점기에 경복궁으로 옮겨졌고, 얼마 전 해체돼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보존처리를 하고 있다. 보존처리 후 석탑이 어디로 갈지가 관심사다. 원주시는 당연히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입장이다. 법천사지에는 석탑과 한 쌍이었던 지광국사탑비(〃 59호)가 있어 반환되면 석탑의 가치는 더 빛날 수 있다.

‘원래의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게 문화재 관리의 원칙 중 하나라는 점에서 반환을 거부할 명분은 사실 약하다. 그러나 제자리로 돌아갔을 때 제대로 관리될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여전하다. 한 전문가는 “문화재 점검을 해보면 야외에 노출된 문화재들이 훼손되는 경우가 많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문영빈 전 문화재위원은 “문화재가 놓일 지역의 환경,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의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문화재 전문가뿐만 아니라 환경, 생물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 의논하고 의견을 모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