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6-07-14 10:00:00
기사수정 2016-07-13 21:07:37
장흥을 즐기는 세가지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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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의 5대 명산 중 하나인 장흥의 천관산에서는 산자락 아래 펼쳐진 너른 들판과 섬들이 겹겹이 에워싼 바다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천관산은 해발 700여m로 높지 않지만 사자바위, 부처바위, 닭바위 등 갖가지 모양의 바위들을 볼 수 있다. |
바다는 어딜 가도 좋다. 해변이 좋은 곳, 해변 뒤 해송이 우거진 곳, 파도가 좋은 곳 등 가는 곳마다 특색이 있다. 하지만 전남 장흥에서는 꼭 해수욕이 아니더라도 바다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하다. 시를 읽으며 바다를 즐기고, 섬까지 걸어서 오갈 수 있다. 여기에 하늘마저 새파랗다면 감탄이 쏟아진다. 장흥에선 바다에서 나는 식재료를 활용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 대표적인 음식이 키조개 삼합이다.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 먹으면 또 찾게 되는 식감과 향, 맛을 품고 있다. 영양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시를 읽으며 거닐 수 있는 바다
장흥은 수도권에서 멀다. 가족이 차로 간다면 휴게소를 들르는 것까지 감안해 5시간 정도는 잡아야 된다. 좀더 편하게 간다면 KTX를 타고 나주역에 내린 뒤 차를 렌트해 움직일 수 있는데 비용은 감안해야 한다. 장흥에 도착하는 순간, 펼쳐지는 푸른 바다에 그 고됨은 파도 거품처럼 사그라진다. 푸른 바다 위 파란 하늘을 나는 갈매기와 바다 위에 놓인 섬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휴가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장흥의 바다를 느끼기엔 부족하다.
‘멀고 먼 세상에서 흰 거품 빼어 문 채 / 내내 사랑하고 악다구니 쓰며 / 줄기차게 살아온 / 그 삶을 후회하는가’(다시 파도, 한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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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한승원 문학산책로’에 세워진 시비석과 바다 풍경. |
장흥 출신의 문학가 한승원 작가가 집필 작업을 하는 율산마을 ‘해산토굴’ 인근에는 ‘한승원 문학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600m에 이르는 이 길엔 한 작가가 지은 시 30수가 돌비석에 새겨져 20m 간격으로 놓여져 있다. 휴가를 가면 여유롭게 책을 읽어야겠다고 마음 먹지만 몇 페이지 읽다 마는 경우가 많다. 이곳에서는 책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 천천히 바다 풍경을 바라보며 시비가 나오면 시 한 편을 읽고, 또 걸으면 된다. 대부분 장흥 바다와 관련한 내용들이다. 600m 산책로를 걸으면 어느새 책 한 권이다. 거기에 푸른 바다 풍경까지 같이 조망할 수 있어 살아있는 시화 한 폭을 담을 수 있는 곳이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해산 가는 길’ 등으로 알려진 한 작가는 딸인 한강 작가가 소설 ‘채식주의자’로 세계 3대 문학상의 하나인 맨부커상을 수상했다.
◆바다를 가로질러 걸어가는 섬
한승원 문학산책로에서 차로 20여분 떨어진 곳에는 남포마을이 있다. 장흥 출신 이청준 작가의 동명소설이자 영화 ‘축제’ 촬영지다. 해안가 외길을 따라 한 굽이 돌아들어선 어촌은 고요한 느낌이다. 마을에 도착하면 바로 앞에 작은 섬이 하나 놓여 있다. 노송과 잡목 몇 그루가 자라고 있는 바위섬이다. 먼바다로 고기잡이 나간 남편이 어둠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불빛을 따라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며 여인네들이 밤새 호롱불을 켜놓고 빌었다고 해 소등(小燈)섬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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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남포마을의 소등섬. 소등섬은 하루에 두세 차례 썰물 때면 섬으로 이어진 길이 모습을 드러낸다. |
소등섬은 하루에 두세 차례 썰물 때면 섬으로 이어진 길이 모습을 드러낸다. 길은 모래가 아니라 포장돼 있는데 5분이면 걸어서 섬에 닿을 수 있다. 포장된 길 옆으로 바닷물이 찰박거리며 끊임없이 밀려드는 모습이 모랫길과는 다른 감흥을 준다. 소등섬은 해돋이 명소로도 이름난 곳이다. 득량만 바다를 붉게 물들이며 떠오르는 태양과 고기잡이를 하는 어선을 한 폭에 담을 수 있다.
바다를 꼭 해변에서만 봐야 하는 건 아니다. 장흥엔 호남의 5대 명산 중 하나인 천관산이 있다. 높이는 700여m로 높지 않지만 바위산이어서 사자바위, 부처바위, 닭바위 등 갖가지 모양의 바위들이 제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특히 정상 부분 바위들이 비죽비죽 솟아 있는 모습이 주옥으로 장식된 천자의 면류관 같아 천관산이라 불린다. 꼭 천관산 정상을 올라야만 바다 풍경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봉우리 중 낮은 편인 닭바위만 올라도 충분하다.
산자락 아래 펼쳐진 너른 들판과 섬들이 겹겹이 에워싼 고요한 바다가 일상에 지친 마음을 위로해주는 기분이다. 탑산사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뒤 산길로 500m 정도 올라가면 되는데 30분 정도면 된다. 다만 계속 오르막길이어서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오르는 것이 좋다. 바다 풍경을 좀 더 가까이서 담고 싶다면 정남진 전망대도 있다. 바다낚시를 즐기면 망망대해에 떠있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안 먹으면 섭섭한 키조개삼합과 된장물회
장흥까지 와서 먹거리를 빼놓으면 안 된다. 남도다. 어느 식당을 가더라도 후회는 안 할 것 같은 곳이다. 그래도 기왕이면 장흥의 대표음식을 먹어야 여행의 즐거움이 커진다. 장흥을 대표하는 음식은 키조개삼합이다. 키조개 관자와 장흥 한우, 표고버섯이 어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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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와 키조개 관자, 표고버섯을 합쳐 키조개 삼합이라 한다. |
각각 하나만 따로 먹어도 빠질 식재료가 아니다. 이를 모아놨다. 한우를 등심이나 살치살 등 부위별로 고를 수 있다. 관자와 한우, 표고버섯을 차곡차곡 쌓아 함께 입에 넣으면 처음엔 특유의 한우 맛이 입안에 퍼진다. 이어 뒤질세라 표고버섯의 향이 다시 한 번 휘몰아친다. 몇 번 씹어도 쫄깃쫄깃함이 계속된다. 키조개 관자가 마지막까지 씹는 식감을 살려주는 것이다. 남부러울 것이 없을 맛이다. 한우는 느끼한 맛에 많이 먹기 힘들 수 있는데, 표고버섯이 이를 잡아준다. 키조개삼합 한판이 ‘게눈 감추듯’ 사라진다.
장흥읍내 토요시장 골목에 삼합 가게들이 몰려 있다. 시장에서는 삼합을 그냥 구워서 먹을 수 있는데, 다른 방식의 삼합을 먹고 싶으면 시장 인근의 ‘만나숯불갈비’도 좋다. 한우를 굽는 판 주위에 육수를 부어 키조개와 버섯을 삶아 먹는데, 나중에 이 국물에 면 사리를 넣으면 기가 막히다.
된장물회도 입맛을 돋운다. 사이다 등을 넣는 물회와는 비교를 거부한다. 잡어와 된장의 푸근한 맛이 면 사리와 어우러지면 몇 그릇을 먹는지 모를 정도다. ‘흡입한다’는 말이 맞을 정도로 정신없이 먹게 된다. 토요시장 골목에도 있지만 지역주민들은 ‘진호네집’을 찾는다. 내비게이션으로 검색해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지역 주민만 아는 맛집이다. 이 집은 돌게로 담은 간장게장 맛이 물회만큼 일품이다.
이 외에도 키조개구이와 바지락초무침까지 장흥의 바다를 입 안에 품을 수 있는 음식은 다양하다. 한편, 무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날려버릴 짜릿한 물축제가 7월29일부터 8월4일까지 열린다.
장흥=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