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6-07-19 12:50:13
기사수정 2016-08-02 08:55:20
‘5만원.’
이모(38·여)씨가 2006년 11월 충남 서산의 한 건강원에서 손에 쥔 첫 월급이다. 그해 시간당 최저임금은 3100원. 이씨는 한 달을 꼬박 일하고도 이틀치 일당(근로기준법상 하루 근로시간 8시간 기준)밖에 받지 못한 것이다. 그는 2009년 4월까지 2년7개월간 매달 같은 액수의 돈을 받았다.
이씨는 당시 5만원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와 배다른, 지금은 연락조차 되지 않는 언니가 이씨의 명의로 생명보험을 가입해 보험료 5만원을 마련해야 했기 때문. 2년 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고령의 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던 터라 가장 노릇도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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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산의 한 건강원에서 7년 넘게 일하는 동안 임금 착취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이모씨의 통장 거래 내역. 건강원 사장 A씨가 2006년 12월을 시작으로 2007년 1, 4월 이씨에게 5만원을 입금한 사실이 선명하게 찍혀 있다./이모씨 제공 |
다급한 마음에 이씨는 동네 미용실에서 알게 된 건강원 사장 A(46·여)씨를 찾아가 건강원에서 일할 수 있는지 물었다. 이내 A씨는 “얼마를 주면 되냐”고 되물었다. 머릿속에 생명 보험료 생각뿐이었던 이씨는 “5만원”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보통 상식으로는 쉽게 상상하기 힘든 일. 이씨는 지난달 병원에서 지적장애는 아니지만 지능이 평균보다 낮은 경도 혹은 경계선급 정신지체(지적장애)란 진단을 받았다.
A씨는 이런 점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이씨에게 ‘너는 2% 부족하다’는 말을 자주 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2009년 5월부터 월급을 6개월마다 5만원씩 올려 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씨가 2013년 10월 일을 그만두며 받은 마지막 월급은 50만원에 그쳤다. 퇴직금은 없었다.
이씨는 건강원에서 지낸 나날은 고된 노동의 연속이었다고 주장한다. 주 6일 근무가 기본인데다 오전 5∼6시 출근하거나 0시가 다 돼 퇴근, 일요일이나 명절 연휴에도 출근하는 일이 다반사였다는 것. 양파나 호박 등 재료를 나르고 세척한 뒤 이를 즙으로 만들어 포장, 배달하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결국 탈이 났다. 2009년 12월 칡 가는 기계에 오른손 검지 1㎝가 잘리는 사고가 난 것. 이씨는 사실상 산업재해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A씨가 4대 사회보험에 가입하지 않아 이씨가 모든 비용을 감당했다.
이씨는 그런 A씨를 친언니처럼 믿고 따랐다. ‘내 잘못으로 다쳤다’는 생각에 검지 절단 사고 당시 A씨가 낸 1차 수술비를 보험금을 받아 A씨에게 돌려줄 정도였다.
이씨는 지난 6월 지인의 도움으로 고용노동부 보령지청에 건강원에서 다 못 받은 임금과 퇴직금을 받기 위해 임금 체불 진정을 냈다. 보령지청 관계자는 “양측간 주장이 전혀 다르다”면서 “1차 출석 조사만 끝낸 상태”라고 말했다.
이씨의 주장에 대해 A씨는 사실과 전혀 다른, 터무니없다는 입장이다. A씨는 “이씨가 건강원에서 일한 게 아니고 놀러 왔다 갔다 하면서 단순히 일을 도와준 것일 뿐”이라면서 “그가 내 건강원에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하루 종일 일하는 모습을 본 사람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이웃 주민들도 이씨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며 깜짝 놀랐다”면서 “일정 금액을 통장으로 입금해준 건 일종의 용돈이었다”고 덧붙였다.
박진영 기자
jy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