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보기술 한계 봉착… 인공지능·영향예보로 극복 가능”

[세계초대석] 고윤화 기상청장 / 강수예보 정확도 93% 달하지만 장마 메커니즘 복잡하고 불안정…지금 기후모델로는 예측 어려워 / 일기현상 주기는 대부분 일주일…자료 워낙 많아 인간은 분석 못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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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기 어렵겠지만 우리나라 강수 예보의 정확도는 92∼93%에 육박한다. 뛰어난 기상 예측력을 자랑하는 영국이나 미국, 일본 등과 견줘도 1∼2%포인트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장마철만 되면 강수 예보 정확도가 ‘우리네 할머니의 직감’만도 못한 수준으로 떨어질 때가 잦다. 2014년에는 장마철 기상청의 호우 예보 적중률이 28%에 그쳐 국회 국정감사에서 난타를 당하기도 했다. 올해도 기상청의 장마철 예보 실적은 ‘흐림’이다.

이는 장마를 만들어내는 메커니즘이 일반적인 비와 달리 워낙 복잡해 현재의 기후모델로는 예측이 어렵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반도를 손바닥만하게 줄이면 실제 장마전선은 지도 위에 그어진 4B 연필선 두께밖에 되지 않는다. 장마 예보란 그 얇은 선이 언제 어디에 그려질지를 맞히는 최고난도 과제인 것이다. 기상청이 ‘예측 실패 화살’을 맞을 때마다 억울해할 만하다.

그렇다고 해도 날씨 예보 정확도를 높이는 것은 기상청의 존재 이유이자 숙명이다. 고윤화 기상청장이 인공지능과 ‘영향예보’ 쪽에 관심을 쏟는 이유이다. 이 두 가지야말로 기상청이 봉착한 기술적 한계를 뛰어넘을 ‘최종병기’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장맛비 대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 18일 서울 동작구 기상청에서 고 청장을 만나 최근 기상청의 고민과 해법을 들어봤다.

고윤화 기상청장은 “우리나라 지형상 예기치 못한 기상이 수시로 나타나 날씨 예보가 빗나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첨단 장비와 인공지능의 기상예보 도입 등을 통해 예보의 정확도를 높이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제원 기자
ㅡ요즘 예보가 자주 엇나간다.

“장마철이라는 게 워낙 불안정하다.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에 있는 기단들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주고, 블로킹(키 큰 고기압이 공기 흐름을 막는 현상) 같은 변수도 있어서 변동성이 크다. 이렇게 날씨가 실시간으로 바뀔 때는 빨리 소통을 해서 알려야 하는데 우리가 이런 부분이 부족하다. 기상청은 (기상예측 프로그램으로) 유럽 ECMWF 모델과 영국 UM모델을 쓰는데 장마철에는 두 모델 결과가 완전히 다르게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보통은 유럽 모델이 비교적 정확도가 높은데, 장마철에는 유럽 모델도 흔들린다. 그러다보니 예보관들도 판단을 내리는 데 애를 먹는다. 예보관들이 주저하다 예보 타이밍을 놓쳐서 오보로 이어지기도 한다.”

ㅡ국민들은 슈퍼컴퓨터가 일기예보에 도입되면 정확성이 크게 올라갈 것으로 기대했다. 지난 3월부터는 슈퍼컴퓨터 4호기도 가동되지 않았나.

“우리(기상청)가 화를 자초한 측면이 있다. 슈퍼컴퓨터를 도입하면 예보정확도가 올라갈 수 있다고 보도자료에도 써놓고 그랬다. 그런데 솔직히 슈퍼컴퓨터는 모델을 돌리는 수단밖에 안 된다. 기후모델이 좋아야지 하드웨어가 좋아봤자 정확도가 올라가는 데 한계가 있다. 물론 슈퍼컴퓨터의 성능이 올라가면 지구를 좀 더 촘촘히 나눠서 고해상도 분석이 가능해지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돌리는 모델이 똑같기 때문에 정확도가 크게 개선되지는 않는다. 올해 예측이 어려운 이유는 라니냐 때문이기도 하다. 지난해 ‘엘니뇨’(적도 부근 해수면 온도 상승)에 이어 지금은 ‘라니냐’(적도 부근 해수면 온도 저하)로 넘어가는 단계인데 이로 인해 변동성이 커진 것이다.”

ㅡ그럼 언제쯤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정확도를 올릴 수 있나.


“기술적인 면에서는 한계치에 이른 상황이다. 강수 유무만 놓고 봤을 때 예보 정확도는 92∼93%까지 올라와 있다. 하지만 기존의 방법으로 풀지 못하는 ‘숨어있는 2∼3%포인트’를 올릴 방법이 틀림없이 있다고 본다. 그 첫번째가 바로 인공지능이다. 일기예보에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IBM이 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ㅡ인공지능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활용한다는 것인지.

“모델을 돌리면 일기도에 고기압이 어디 있고, 저기압이 어디 있는지 이런 배치도가 나온다. 이 그림과 가장 유사한 과거에 실제 날씨가 어땠는지를 추적하면 예보를 내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지금도 이런 시스템이 있기는 하지만 현재의 기압배치도만 놓고 과거에 유사한 패턴을 찾아 분석하는 수준이다. 그런데 일기현상은 주기가 7일 정도 된다. 그러니까 7일 정도의 흐름에 대해 과거 데이터까지 놓고 분석할 수 있다면 예보 정확도를 상당 부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자료가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사람은 이런 분석을 할 수 없다.”

ㅡ기상청 예보관들의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는데.

“지난해 예보관 훈련을 100% 다 시켰다. 지난해부터 교육을 받지 않으면 예보관으로 종사할 수 없도록 했다. 예보관은 외부 기관에서 양성할 수가 없다. 아무리 뛰어난 교수라고 해도 현업에서 예보를 해보지 않으면 이 업무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지난해에는 급한 대로 예보관 교육을 4주짜리로 했는데 영국, 일본은 물론 중국도 기상대학이 있다. 예보관들이 직접 예보관을 양성하는 곳이다. 우리도 인재개발원이라도 만들어서 교육을 했으면 좋겠는데 그러자면 예보관 인력을 늘려야 되기 때문에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또, 단순히 비가 온다, 안 온다 이렇게 단정적으로 예보하는 게 아니라 그로 인해 어떤 영향이 있을지도 함께 전달하는 영향예보도 국민들이 체감하는 정확도를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ㅡ영향예보라는 게 어떤 내용인가.

“예를 들어 부산에 10㎝ 눈이 오는 것이랑, 강원도에 10㎝ 눈이 오는 것은 차원이 다른 얘기다. 이렇게 같은 기상현상이라도 실제 벌어지는 사회현상은 다를 수 있는 만큼 그로 인한 항공기 결항 가능성, 도로결빙 예상지역 등의 정보를 함께 전달하는 것이다. 2020년에 영향예보를 정식으로 서비스하는 것이 기상청의 목표다.”

ㅡ미세먼지도 빼놓을 수 없는 문제다. 10년 전 환경부에서 대기보전국장을 맡았을 때 수도권 대기질 개선대책도 내놓고 그랬는데 아쉬운 부분은 없나.

“거버넌스(협치)가 문제였다. 여러 중앙부처, 시·도와 합동으로 대책을 마련했어야 하는데 이런 부분이 아쉽다. 결과적으로 보니까 여기저기서 중구난방으로 정책을 내놨더라. 일사분란하게 정책이 진행되는 게 아니라 시·도별로 다르고, 부처별로 다르고.”

ㅡ그때 만약 제대로 대책이 만들어졌다면 지금 와서 이런 논란은 없었을까.

“그때 제대로 했어도 논란은 있을 수밖에 없다. 중국에서의 미세먼지 유입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미세먼지 양을 보면 2012년 이후에 확 늘었다. 그 전까지는 조금씩 개선되다가 다시 악화했다. 중국의 미세먼지 농도가 1000㎍/㎥이라고 하면 한국으로 날아오는 양은 그 5분의 1 정도 된다. 중국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ㅡ앞으로 기상청이 어떤 기관이 돼야 한다고 보나.

“예보 서비스만이 아니라 다른 분야와 융합해서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예보와 새로운 서비스 두 축으로 발전해야 한다. 기상 정보가 필요한 분야가 수없이 많지 않나. 농업, 어업, 교통 이런 분야 전문가와 꾸준히 소통해서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내야 한다. 청장 취임 초기부터 강조한 빅데이터 사업도 그런 맥락에서 나왔다. 기상청이 보유한 방대한 양의 기상기후 빅데이터를 사회 곳곳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환경부에 있다 기상청에 와보니 문화가 너무 달랐다. 기상청은 업무 특성상 출신 학교와 학과가 아주 제한적이다. 그러다보니 외부와의 소통에 약한 면이 있다. 사회는 지금 빅데이터와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활성화 등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기상청도 이런 흐름을 빨리 수용해야 한다. 기상청 문화를 바꿔서 외부와 활발히 교류토록 하는 것이 청장으로서의 목표다.”

대담=문준식 사회부장, 정리=윤지로 기자

◆ 고윤화 기상청장은


△1954년 충남 예산 출생 △경기공고·한양대(기계공학) 졸업 △영국 리즈대 공학 박사 △기술고시(15회) △환경처 특정폐기물과장·소음진동과장 △환경부 폐기물시설과장·대기정책과장 △대통령비서실 환경비서관실 선임행정관 △환경부 대기보전국장·자연보전국장 △국립환경과학원장 △한국기후변화학회장 △한림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