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6-07-20 21:42:12
기사수정 2016-07-20 21:42:12
전남 구례군 토지면 지리산의 남쪽 자락에 연곡사가 있다. 임진왜란 때는 왜병에 의해 전소되었고, 1907년에는 의병을 진압한 일본군의 방화와 6·25전쟁 때 피아골 전투로 폐허가 되었던 곳이다. 슬픈 역사를 지닌 이곳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승탑(僧塔) 3기가 있으니, 동승탑(東僧塔·사진), 북승탑(北僧塔), 그리고 소요대사탑(逍遙大師塔)이다.
연곡사는 통일신라시대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창건해 신라 말부터 고려 초까지 선(禪)을 수련하는 사찰로 이름이 높았다. 동승탑은 풍수의 대가인 도선(道詵)의 승탑으로 전한다. 승탑 곳곳에는 구름에 휩싸인 용과 사자가 새겨져 있다. 윗받침돌에 새겨진 불교의 낙원에 사는 극락조(極樂鳥)인 가릉빈가(迦陵頻迦·사람의 머리에 새의 몸을 한 상상의 새)는 입체감이 도드라진다.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상은 기둥과 문이 새겨진 몸돌에, 지붕돌에는 서까래와 기왓골에다 막새기와까지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다. 승탑 하나에 불교의 세계가 건축적으로 구현되어 있는 것이다. 동승탑과 함께 국보로 지정된 북승탑은 고려 전기의 것으로 추정되며, 보물로 지정된 소요대사탑은 1650년에 세워졌다.
승탑에는 1000년에 걸친 모방과 창조가 눈부시다. 가장 먼저 통일신라시대에 동승탑을 만들었고, 고려의 석공이 이를 모방해서 북승탑을 조성했다. 그리고 조선의 석공은 다시 이를 모방하여 소요대사탑을 세웠다. 장인들이 왜 앞선 승탑을 모방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덕분에 우리는 한 장소에서 1000년에 걸친 통일신라, 고려, 조선을 대표하는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다. 불교가 융성했던 고려 장인의 수법은 어찌 보면 통일신라의 장인보다 더 섬세하다. 서승탑의 조각과 문양 일부는 앞선 두 승탑과 달리 과감히 시대에 맞게 변형되어 있다. 동승탑과 북승탑은 국보, 소요대사탑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지만, 감히 누구도 어느 것이 낫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누군가 ‘모방이 또다른 창조인가’를 고민하고 있다면, 연곡사에 가서 이들 승탑을 만나보기를 권한다.
조상순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