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6-07-25 21:27:28
기사수정 2016-07-25 21:27:28
‘위장술 아트’ 작가 에마 해크
김홍도의 ‘하화청연도’(荷花??圖) 이미지를 배경으로 젊은 무용수 김효영(성균관대 대학원생)이 섰다. 작가는 무용수의 몸을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무용수는 김홍도의 그림 속으로 스며들었다.
인체를 캔버스 삼아 주변 환경과 일치시키는 ‘위장술 아트’로 주목을 받고 있는 호주 작가 에마 해크(Emma Hack·44)가 지난주 토요일 자신의 전시가 열리고 있는 사비나 미술관에서 현장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무더위 속에서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6시간 동안의 강행군이었다. 무용수의 머리카락이 스프레이로 고정되면서 얼굴과 머리카락부터 채색돼 점차 온 몸이 ‘하화청연도’와 하나가 되어갔다. 무용수는 정적인 자세에서 맨살에 붓이 닿는 차가운 이질감과 손바닥 같은 곳의 간지러움을 참아내야 했다. 작업이 끝나고 채색된 몸으로 춤사위가 펼쳐지면서 대미를 장식했다. 힘이 들었음에도 무용수는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미술과의 협업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겠다는 당찬 다짐을 밝혔다.
동식물의 생존전략인 위장은 1896년 미국 화가 애벗 핸더슨 세이어가 자연사 잡지 ‘오크’(The Auk) 에 ‘보호색의 기본 법칙’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모든 생물이 완벽하게 위장되어 있다’고 주장한 이후 입체주의, 옵아트를 비롯한 예술계의 관심을 끄는 주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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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무용수 김효영의 몸에 보디페인팅을 하고 있는 에마 해크. 그는 메이크업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보디페인팅에 이르게 됐고, 나름의 ‘위장술 아트’를 개척하고 있다. |
여성 이미지가 주변 환경과 하나가 되는 것에 매료됐다는 에마 해크는 10대부터 헤어디자이너, 메이크업 등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보디페인팅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순수미술을 하고 싶었는데 부모님의 반대로 직업을 갖게 되면서 오늘의 작업으로 이어졌다. 나는 항상 예술가가 되길 꿈꿨다. 2001년 세계 보디페인팅 챔피온십에서 우승을 하면서 보디페인팅 아티스트로 세계 여러 곳의 초대를 받았다. 유럽, 캐나다, 두바이, 홍콩을 돌며 티파니, 삼성, 소니, 파스팔리 펄 등 다양한 회사들을 위한 라이브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예술가로 그는 맨몸에 옷을 그리기도 했지만 요즘엔 주로 벽지와 직물 디자인을 활용하고 있다. 보통 10시간 이상의 작업시간을 거쳐 작가가 모델의 몸에 손수 그려낸 위장술(카무플라주·camouflage) 아트는 인물과 주위 환경이 하나가 되게 하며 최종적으로 사진을 찍는 것으로 작업이 마무리 된다. 위장도 감추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 아니라 스며들어 하나된 모습에 방점을 찍는다.
에마 해크는 벨기에 가수 고티에와 함께 제작한 뮤직비디오 ‘섬보디 댓 아이 유스트 투 노’(Somebody That I Used to Know)가 그레미상을 수상하면서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이 영상은 현재까지 유튜브에서 78억뷰를 달성하면서 미국, 영국, 유럽에 본격적으로 그의 이름을 전파했다. 이밖에도 17명의 모델로 찌그러진 자동차를 형상화 한 보디페인딩 작업 ‘모터 액시던트 커미션’(Motor Accident Commision) 프로젝트와 21명의 발레 무용수들과 작업하는 등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진행하면서 지명도를 높여왔다.
“고티에 뮤직비디오 제작은 가장 긴 시간이 걸린 작업으로 연속 23시간을 소비했다. 한 프레임마다 조금씩 이동하며 촬영해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스톱 모션 기술을 이용해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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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게이샤를 전면에 등장시켜 지난 시절의 여성 억압을 환기시켜 주는 작품. |
그는 호주 직물디자이너 플로렌스 브로드허스트 (Florence Broadhurst,1899-1977)의 디자인을 즐겨 쓴다. 기하학적이면서도 자연적인 동양적 느낌이 좋아서다.
“브로드허스트의 디자인은 인테리어뿐 아니라 패션업계에서도 사랑받을 정도로 독특한 매력이 있다. 이를 배경으로 모델을 세우고 , 모델의 몸에도 그의 디자인을 그리는 방식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브로드허스트는 몇 년 동안 중국 상하이에서 살았다. 만다라 등 그의 동양적 디자인 모티브는 에마 해크의 주요 관심사항이기도 하다. 결국 그는 주변 환경에 스며드는 작업을 통해 인간과 동물, 자연의 조화로운 삶, 파괴가 아닌 서로 돌보는 삶을 이야기 하고 싶어 한다. 최근 들어 그는 배경과 인물을 일치시키는 것에서 더 나아가 동물을 앞에 배치하기도 한다. 더욱 몽환적인 분위기다. 생생한 입체감을 위해 렌티큘러 작업도 선보이고 있다.
“20세기 여성을 억압했던 모습을 상기시키기 위해 여성을 배경의 전면에 드러내기도 한다. 이 시대의 또 다른 억압은 없는지 환기시키는 작업이다.”
그는 청화백자의 문양을 활용하기도 한다. 블루와 화이트의 배색이 인상적이다. 무엇보다도 그에게 중요한 것은 모델이다. 캔버스에 먼저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배경으로 모델을 세운다. 그런 상태로 장시간 모델의 몸에 그림을 그려야 하니 모델과의 호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때론 캥거루, 큰도마뱀, 큰유황앵무새 같은 호주의 대표적 동물들이 모델의 품에 안기기도 한다.
“내 작업의 모델은 인내심이 많아야 한다. 현재 나는 특별한 프로젝트를 제외하곤 세 명의 주된 모델들과 일하고 있다. 간혹 새로운 모델을 세우기도 하지만, 이 역시 최소한 몇 년 정도는 미리 알고 지낸 상태여야 가능하다. 작업을 위해 장시간 서 있는 것은 매우 고통스럽기 때문에 내가 상대를 잘 파악하고 어디까지를 요구할 수 있을지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두 여인이 마주한 그의 작품은 특별하다. 눈을 감은채 기도하는 모습이 이채롭다. 사실상 자기와 대면하고 있는 모습이다.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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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겹의 렌티큘러 작업으로 깊이감을 주는 작품 ‘ 한밤의 비밀 정원’ |
“어렸을 때 할머니가 잘 가꾸어 놓으신 정원에서 나는 놀기를 좋아했다. 그럴 때마다 정원에 앉아 나 혼자서 대화하는 것을 즐겼다. 내가 나와 대화를 나눈 것이다.”
그는 적막의 공간인 사막에서 , 어둠의 공간인 동굴에서 구도자들이 자기 자신과 대화를 즐겼던 모습을 떠올려 본다.
“인간, 동물 그리고 너와 나는 자연으로서 하나다. 내면과의 대화가 가져다 주는 깨달음이다. 동식물은 물론 사물들까지 서로의 영혼을 교환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애니미즘은 어쩌면 우리에게 오래된 미래의 정신유산일지 모른다."
테러와 폭력으로 혼란한 시대일수록 그는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자기성찰의 시간을 가질 것을 작품을 통해 넌지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사운드 디자이너로 인터뷰 자리에 동참한 그의 남편에게 “당신은 행복한 남자 같다”고 말을 건네자 “우린 서로 스며드는 파트너”라고 화답했다. 전시를 위해 두 사람은 전 세계를 여행하고 있다. 한국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10월30일까지 사비나미술관. (02)736-4371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