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6-07-26 21:02:19
기사수정 2016-07-26 21:02:18
다리 난간 위 위태로운 한 생명…바로 그때 한 줄기 빛이 비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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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30일 새벽 박현철(42) 대원이 구조된 투신자와 대화를 나누며 다독이고 있다. |
흰색 셔츠의 중년 남성이 난간 앞을 서성인다. 강물을 바라보다 신고 있던 검은 구두를 벗는다. 소지품을 꺼내 신발에 넣더니 돌연 난간에 가랑이를 걸친다. “뛴다! 긴급 출동, 긴급 출동~” 비상벨이 울리고 붉은색 구조대 보트가 이내 강물을 가른다. 어느새 도착한 구조대원들이 강물 위 15m 다리 난간에 매달린 사내에게 탐조등을 비춘다. 채 3분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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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새벽 마포대교 난간에 한 자살 시도자가 매달려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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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새벽 이규진(45) 대원이 서강대교 난간에 매달린 자살 시도자에게 서치라이트를 비추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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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새벽 마포대교 아래에서 지원 나온 반포 수난구조대 대원이 만약의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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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소방서 대원들이 14일 새벽 마포대교 난간에 매달린 자살 시도자를 구조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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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16일 밤 여의도 수난구조대 이상영 3팀장이 마포대교에 서치라이트를 비추며 자살 시도자의 위치를 살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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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16일 밤 지원 나온 반포 수난구조대 선박이 마포대교 인근을 탐색하고 있다. |
영화 속 장면이 아니다. 지난달 16일 오후 8시40분, 한강 마포대교 위에서 벌어진 실제 상황이다. 대한민국 자살률은 13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다. 하루 평균 40명, 한 달이면 약 100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38분마다 생명 하나가 사라진다. 심장질환에 비견되는 주요 사망원인이지만 은밀한 죽음인 자살은 언제나 우리의 인식 저 너머에 있다. 평화로워 보이는 한강에 매년 수백 명이 몸을 던진다는 그 일상화된 비극의 흔적을 따라 한강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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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력을 다스리는 납 벨트와 추진력을 주는 오리발. 수면 아래에 가라앉은 투신자를 수색하는 수난구조대원의 기본 장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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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30일 새벽 이건태(37, 왼쪽) 대원과 백광철(35) 대원이 현장으로 출동하는 배에서 장비를 착용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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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30일 새벽 이건태(37, 오른쪽) 대원과 백광철(35) 대원이 성산대교 북단에서 투신자를 구조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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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30일 새벽 이건태(37, 오른쪽) 대원과 백광철(35) 대원이 구조를 마친 뒤 배 가장자리에 매달려 있다. |
최근 5년 동안 약 1300명이 한강에서 자살을 시도했다. 수난구조대의 활약으로 70%가 무사히 구조됐다. ‘자살 명소’ 마포대교를 전담하는 여의도 수난구조대는 전체 신고 건수의 60% 이상을 소화한다. 이곳 대원들은 항상 자살에 대비한다. 지난 한 달간 틈틈이 그들과 동행했다.
“살리고 죽이는 건 하늘의 일이지만 우리는 그 일에 가장 가까이 있다.” 출동에 나섰다가 돌아온 강병식(46) 2팀장의 말이다. 투신한 사람을 구조하는 수난구조대의 일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다. 대부분의 구조 출동은 목격자의 신고로 이뤄진다. 밤 11시가 넘어서며 신고 전화가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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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전 마포대교 인근에서 수색작업에 나선 김현진(33) 대원이 수면위로 올라와 숨을 고르고 있다. |
“자살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순 없지만 힘에 부쳐 보이는 발걸음은 충분히 공감한다”며 김현진(33) 대원이 CC(폐쇄회로)TV를 가리켰다. “난 예민하지 않아 다행입니다.” 올 초 수난구조대에 합류한 그는 강물 아래서 사람들의 죽음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웠다고 한다. 극도로 어둡고 탁한 물속 수색 작업은 눈이 아닌 손이 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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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구조대에 설치된 CC(폐쇄회로)TV가 난간 앞에 망설이는 사람을 비추고 있다. |
칠흑 같은 강물 속 투신한 사람의 몸이 손끝이나 팔꿈치에 닿을 때면 소름이 온몸으로 퍼지곤 했었다. “여전히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없지만 지금은 적당히 무뎌졌다”며 멋쩍게 웃었다. 일종의 자기방어기제가 작동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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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새벽 이용선(37, 왼쪽), 박상진(35) 대원이 마포대교 아래서 복귀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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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30일 새벽 박현철(42) 대원이 구조된 투신자와 대화를 나누며 다독이고 있다. |
자발적 죽음이라는 지극히 개별적인 행위를 위해 한강이라는 공개된 장소를 찾는 이들. 그들은 ‘나를 봐 줄 그리고 괜찮다고 말해 줄’ 단 한 사람이 필요했던 건 아닐까?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해 생과 사의 경계에 선 이에게 조명을 비춘 대원들은 기꺼이 한 사람이 돼 주고 있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삶을 선택하게 하는 건 사람이고 사랑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한 사람이 되어주고 있는가?
사진·글=하상윤 기자 jonyyu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