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동하 “내게 ‘그랭구아르’는 곧 뮤지컬… 퇴짜 맞아도 포기할 수 없었죠”

내 노래 듣고 단칼에 거절한 작곡가에게 “아이 러브 그랭구아르” 애원 / 연기 논란은… 제가 더 노력해야죠 “아이 러브 그랭구아르.”

2013년 가수 정동하는 이 말을 반복했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작곡가 리카르도 코치안테 앞이었다. 인사 자리인 줄 알고 노트르담팀을 방문했다가 얼결에 ‘대성당의 시대’를 부른 참이었다. 그의 노래를 들은 코치안테는 ‘네겐 집시 우두머리 클로팽이 딱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동하는 뮤지컬과 첫사랑에 빠지게 해준 그랭구아르 역을 포기할 수 없었다. 끈질기게 “아이 러브”를 되풀이했다.

정동하는 닮고 싶은 배우로 서범석을 꼽으며 “서범석 선배는 뮤지컬 들어갈 때 원작을 다 읽고, 캐릭터가 뭐고 왜 이런 장면이 있는지 다 공부하신다”며 “활동한 지 굉장히 오래 되셨는데도 끊임없는 열정을 갖고 있는 게 멋있다”고 말했다.
“코치안테가 ‘알았으니 나와 협상을 하자’고 손을 들더라고요. 3일 뒤에 다시 보자, 대신 클로팽·그랭구아르 넘버를 다 준비해와라 하고. 코치안테가 그때 일을 지금도 기억해요. 얼마 전 ‘아이 러브 그랭구아르’ 했더니 ‘아이 리멤버’ 하더군요.”

2012년 작은 작품을 시작으로 뮤지컬계에 발을 들인 정동하는 1년 뒤 꿈꿨던 그랭구아르가 됐다. 그리고 올해 더 성숙해진 그랭구아르로 돌아왔다. ‘노트르담…’이 공연하는 서울 중구 블루스퀘어에서 최근 만난 정동하는 “3년 전 제 눈높이에서 못 보던 것들이 이제 조금씩 보인다”며 “전에는 지적을 받으면 ‘왜 저렇게 말하지’ 생각했다면 지금은 스스로 문제점이나 아쉬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2013년에 그랭구아르를 한 마이클 리 형이 초반에 힘들어하셨어요. 워낙 뛰어난 배우잖아요. 그런데 그랭구아르는 해설자였다가 한순간 극 속으로 들어가 공감하고 슬퍼해야 하니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저는 멋도 모르고 해서 ‘어? 왜 힘들어하지 했는데’ 이제 알 것 같아요. 저도 그러려고 노력 중이에요. 해설자일 때는 관객에게 정확하게 설명하고, 극 속 상황으로 들어갈 때는 공포에 떨고 궁금해하고 신기해하려고요.”

그는 “노트르담 드 파리가 집이라면 그랭구아르는 집의 주인”이라며 “첫 장면에서 ‘자, 이제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들려줄게, 들어볼래’ 하고 시작해서 흐름을 이어가고 때로는 극 안으로 직접 들어간다”고 말했다. 올해 공연에서 그가 목표한 연기는 ‘극 속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기’다.

“프랑스팀은 배우보다 극 자체가 빛나길 원하는 것 같아요. 저도 동의해요. 예전에는 ‘멋있어 보였으면’ 했다면 지금은 그런 생각을 버렸어요. 그냥 그 시대에 음유시인으로 살면 어땠을까 생각하죠. 엉성하고 깜짝 놀라고 때론 두려워하는 인간적인 면을 많이 표현하려 해요.”

이번 시즌 정동하는 노래와 연기 모두 호평받고 있다. 시원한 고음과 성량이야 워낙 정평이 났지만, 조금은 어색했던 몸 연기도 능숙해졌다는 평이다. 몸 동작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그는 바로 두 손을 들었다. 무심히 “죄송해요. 좋아지고 있어요. 노력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몸 쓰는 부분에서 이번에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그랭구아르는 굉장히 어설픈 모습도 가지고 있거든요. 춤꾼이 아니니까요. 저도 굉장히 춤을 못 추니 솔직하게 내보이면 된다 생각해요. 군무 출 때 저 혼자 멋스러움이 떨어져 너무 죄송한데, 속상하진 않아요. 근데 평소 생활할 때의 저도 그냥 다 어색해요. 걷는 것부터가 어색하고. 어릴 때 혼자였던 시간이 많아서 그런가봐요.”

정동하는 어린 시절 홀로였고 내성적이었다고 종종 말했다. 초등학생 때 이사를 마흔 번 가까이 한 영향이 컸다. 그래서인지 한 발 뺀 채 말하는 듯한, 말수가 적은 사람 특유의 인상을 풍겼다. 툭 터놓고 엄살 부리고 한탄하며 생색 내지도 않았다. 노래 못지않게 연기를 잘 해야 하는 뮤지컬계로 처음 왔을 때 고민이 많았을 법한데도 ‘항상 최선을 다한다’고만 했다.

“제가 2005년부터 그룹 ‘부활’ 보컬을 했어요. 그런데 2009년 인터뷰 영상을 찾아보세요. 그때도 말을 정말 못 해요. 성능 안 좋은 로봇이라고 생각하실 거예요. 2009년 ‘부활’이 알려지고 활동이 많아지기 전까지는 대화 자체가 어색했어요. 실생활에서 제가 진화하고, 다른 배우들을 연구하면서 연기가 는 것 같아요. 또 어떻게 연기할까 하기보다 그냥 극 속의 상황 안에서 살려고 애썼어요. 저는 어린 시절 혼자 있어서 자아 형성이 힘들었는데, 역으로 자아라는 옷이 없어서 극 중 인물이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내성적이니 대중 앞에 서는 게 고역일 것 같지만 그는 정반대였다. “사람들에게 피드백을 받아본 감이 적다보니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몰랐다”는 그는 “카메라가 날 비추고 이게 전국으로 나가리라는 두려움 대신, 혼자 있던 시간이 많은데 사람들이 날 봐주니 따뜻하다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가수로서나 뮤지컬 배우로서나 행복감이 똑같아요. 전부터 무대에 오르면, 뭐에 행복을 느끼는지도 모르고 그저 행복했어요. 뮤지컬하면서 확신이 들었어요. 제게 무대는 행복하면서 재밌고 즐거운 곳이란 걸요.”

송은아 기자 se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