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9일 만에 실명…하지만 엄마는 강했다

침대 왼쪽에는 엄마가 있었고 오른편에는 남편이 있었다. 품에 안았던 아기를 남편에게 건네면서 “나중에 봐”라고 말했는데, 그게 마지막 인사가 됐다. 얼굴에 씌운 마스크가 다시 벗겨졌을 때 보이던 것들이 보이지 않게 됐다. 아들을 낳은 지 아흐레 만에 ‘정식’으로 실명 판정을 받았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호주 언론들에 따르면 작년 7월29일에 뇌종양 제거 수술을 받았던 사라 호킹(29)은 거의 시력을 잃었다. 완전한 실명은 아니었지만, 근처에 있는 사람 얼굴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됐다. 얼굴을 닿다시피 맞대야 상대방이 웃는지 알 수 있을 뿐이다.

빅토리아주의 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사라는 곧 태어날 아기 그리고 새로운 직장을 얻게 될 남편 생각으로 기대에 부풀었다. 세 식구가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장밋빛 인생이 눈 앞에 펼쳐진 것 같았다.

하지만 지난해 6월 사라에게 문제가 생겼다. 칠판이 흐릿해졌다. 그동안 잘 보였던 컴퓨터 모니터와 책 속 글씨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라는 임신 중인 데다가 몸이 피곤해져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7월이 되자 사라의 눈은 더 나빠졌다. 남편 카메론과 소파에 앉아 뉴스를 보던 그는 화면 속 앵커의 얼굴을 거의 볼 수 없었다. 눈 형태는 보였지만, 눈동자 색깔은 알아보지 못했다. 어떤 화장을 했는지도 몰랐다. 코도 없었다. 그냥 얼굴 전체가 뭉개진 느낌이었다.

사라는 CT 촬영 결과 머릿속에 종양 3개가 들어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그 종양 중 일부가 시신경을 눌러 시력이 떨어졌다는 말도 들었다. 사라는 멜버른의 한 병원으로 옮겨져 제왕절개 수술을 받았는데, 종양치료 중 뱃속 아기에게 약이 악영향을 미칠까 우려해 내린 결정이었다.

사라의 아들 아처는 임신 38주 만에 태어났다. 심각할 정도로 사라의 출혈이 많아 의료진은 수술에 애를 먹었다. 태어난 아처는 24시간 동안 신생아 집중 치료실에서 치료도 받아야 했다.

사라는 “태어난 아들을 안고 느낀 고요함을 기억한다”며 “아들 얼굴을 보기를 원했고, 꼭 안아주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그는 “엄마와 태어난 아기가 처음으로 교감을 느끼는 순간을 내 손으로 맞이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이제는 수술이 급했다. 아처를 낳은 지 9일 만에 또 다른 병원에서 사라는 종양 제거 수술을 받았다. 마치 영화 속 느린 장면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고 사라는 기억했다.

사라는 수술실로 옮겨지면서 “나중에 봐”라고 가족과 약속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시신경을 둘러싼 종양 두 개를 제거했지만, 그는 시력을 상실했다. 다시 일어났을 때 그는 병원으로부터 정식으로 실명 진단을 받았다.

 



사라는 쉽게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밝은 대낮, 눈앞에 아기 얼굴을 맞닿을 정도로 가까이했을 때, 희미하게 웃는 아들의 모습을 본 그는 인생을 단념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직 완전히 희망의 끈을 놓을 때는 시기는 아니었다.

처음에 기저귀 갈아주는 것도 어려웠지만 노력 끝에 아처가 생후 10주가 되었을 때는 홀로 하는 게 가능해졌다. 물론 ‘밝은’ 조명이 뒷받침되었을 때만 가능했지만, 어느 정도 엄마 역할을 하게 됐다는 게 사라에게 중요했다.

사라는 자신을 보살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주변 사람들 말에 화를 냈다. 그는 혼자서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런 일이 자기에게 벌어지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정말로 독립적인 사람인 동시에 좋은 엄마가 됐다.


그때부터 사라의 블로그 생활이 시작됐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원했다. 처음에는 스마트폰과 컴퓨터 키보드를 쓰는 게 어려웠는데, 그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호주 비영리 단체 ‘비전 오스트레일리아’의 도움 덕분에 지금에 이를 수 있었다고 고마워했다.

사라는 자신이 시각장애인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좋아한다. 그는 동시에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시각장애인처럼 보인다는 건가요?”라고 묻기도 한다. 그러면서 “시각장애가 있다고 잘 꾸며 입지 말라는 법이라도 있나요”라고도 말한다.

사라는 “지난 1년을 남편과 돌이켜보니 눈물이 났다”며 “그래도 우리는 아들을 잘 키웠고, 남편은 새로운 일자리도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전에 꿈꿨던 것들을 이뤘다”며 “약간 ‘다른’ 길을 돌아오기는 했지만 말이다”라고 덧붙였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사진=news.com.au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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