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입시공화국 대한민국의 민낯

입시지옥과 취업전쟁의 굴레
무한경쟁에 숨이 막히는 나라
잘못을 알면서도 고치지 못해
교육은 왜 교육을 반성 못할까
성적표에 석차를 기록하는 것은 일본이 유일한데 성적순으로 사람을 줄 세우는 일을 그대로 흉내 내는 나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공부 시간이 가장 긴데 학업성취도가 가장 낮고 사교육이 가장 심한 나라. 수능 1점에 인생이 양지에서 음지로, 음지에서 양지로 뒤집히는 나라. 모든 엄마들을 ‘일방적 자식 사랑이 과잉인 욕망 덩어리의 전형적인 한국 어머니’로 만드는 나라. 하루 평균 1.5명의 청소년이 성적을 비관해 자살하는 나라. 교육의 이름으로 아이들을 교실에 묶어놓고 십자가 처형을 받게 하는 나라. 교육부가 교육을 망치고 있는 나라….

출간 4주째 베스트셀러 1위를 유지하고 있는 조정래 작가의 장편소설 ‘풀꽃도 꽃이다’에서 발췌한 문장들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한국 엄마와 입시교육으로 멍들고 죽어가는 청소년의 이야기는 우리 가정의 민낯이다. 입시공화국 대한민국에서, 대학 입학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나, 무한경쟁에 내몰려 살고 있는 우리 사회의 민낯이다. 피로사회, 과로사회라 불릴 만큼 다들 열심히 사는데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30여 년을 한결같이 우리 사회의 당대적 이슈를 묘파해낸 노작가가 한국 교육문제를 비판하기 위해 펜을 빼들었다. 실제로 대한민국 총체적 난국의 8할은 대학을 겨냥한다. 저출산, 사교육, 청소년 문제, 빈부격차, 계층의 세습구조, 부동산 투기, 학연과 학벌 문제, 사회 병리학적인 제반 사회문제가 대학과 연동해 있다.

정끝별 이화여대 교수·시인
소설의 첫 장면은 복도에 공시된 모의고사 성적 순위를 바라보는 학생들 대화로 시작한다. 그 대화라는 게 살맛 땡, 쓰바, 또라이, 개소리, 웃프다, 짱나 따위의 추임새를 거느린 사납고 거친 불평불만의 말이다. 이런 비교육적이고 비인간적인 석차 공개 뒤에는 학교장이, 학교 뒤에는 교육부가 있다. 또 그 교육부 뒤에는 서열화된 학벌 중심의 사회구조와 우리의 맹목적 추종이 있다.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 건동홍…. 4년 전 첫째 아이 대입설명회 때 초빙강사에게 들었던 말이다. 복도에 붙은 전교 석차처럼, 전국·학교·반 석차는 물론 과목별 석차에 원점수와 표준편차까지 기록된 성적표처럼, 입시지도의 좌표 역할을 하는 대학의 서열이었다. 이것부터 외워야 진로 지도 제대로 합니다, 학부모들에게 요구한 강사의 주문이기도 했다. 이 주문 뒤에는 정부기관과 단체들이 공시하는 대학평가 순위와 등급이 있고, 그 앞과 뒤에는 지원금이든 임금이든 연봉이든 돈이 있다. 입시지옥을 통과해 성적순으로 서열에 맞게 입학한 대학은 또 어떤가. 똑같은 빵 틀에서 20년 동안 구워진 붕어빵들이 또다시 취업과 연봉을 목표로 취업 스펙으로서의 학점과 학위를 취득하는 곳이 돼 가고 있다. 고3은 다시 대4 아니 대5로 연장됐고, 더더더의 스펙에 대출과 알바가 더해졌을 뿐이다. 상아탑(象牙塔)은 사어(死語), 우골탑(牛骨塔)도 옛말, 최근 대학을 인골탑(人骨塔)이라 부르는 이유다.

소설의 이야기를 이끄는 주인공은 고교 교사다. 강교민, ‘강력한 교육 민주주의’의 약자란다. 극심한 소득격차와 돈만 좇는 문제의 사회를 만드는 우리 교육의 3대 악재를 저자는 엄마로 상징되는 부모의 문제적 탐욕, 정부 지시에 굴종하는 학교의 문제적 교육과 행정, 성적 순위로 학생과 학교를 줄 세우는 정부의 문제적 교육정책으로 진단한다. 누구나 공감하는 악재들이다.

이렇게 교육이 병들고 그 제도와 정책이 문제라는 건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데 왜 개선되지 않는 걸까. 성적과 학벌과 돈이 아닌 다름과 모험과 비전의 트라이앵글이 만들어내는 교육은 정말 불가능한 걸까. “반성하지 않는 졸렬한 정책 수립자들과/ 반성하지 않는 수치를 모르는 기득권층과/ 반성하지 않는 절망에 빠진 민중들 사이에서”(김수영, ‘절망’), 교육은 왜 교육을 반성하지 않는 것일까. 역설적이게도 이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스테디셀러가 되는 한 우리의 교육은 문제적인 너무나 문제적인 것이다.

정끝별 이화여대 교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