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부자 ‘돈주’의 성장… 북한이 바뀌고있다

임을출 지음/한울아카데미/2만6000원
김정은 시대의 북한 경제/임을출 지음/한울아카데미/2만6000원


북한 경제가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경제 회복의 활로는 주로 정부 쪽보다는 개인 분야에서 열리고 있다는 것이다.

30여 년간 북한 경제에 몰두해 온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북한 경제의 최근 움직임을 상세히 전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김정은 시대 들어 여러 경제 지표들이 호전되고 있다. 농작물과 공산품 생산도 증가세에 있다. 취임 초기 김정은 세력은 취약한 권력 기반을 다지기 위해 민생 분야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보일 필요가 있었다. 이에 따라 한정된 재원을 경제에 쏟아붓기 어려운 상황에서 풀뿌리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저자는 경제 활기의 주요인으로 시장 경제의 활성화와 사금융, 돈주의 성장을 꼽는다. 특히 2012년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장마당이라 불리는 시장이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다. 장마당 수는 꾸준히 증가해 현재 380~400개 정도. 남한 정보 당국은 장마당 이용 북한 주민이 하루 100만~180만 명 정도일 것으로 추산했다. 2500만 명인 전체 북한 주민의 4~7%가 매일 장마당을 이용하는 셈이다.

그러나 탈북자들의 얘기에 따르면 실제 장마당 이용 주민은 이보다 훨씬 많다. 장마당은 이미 북한에서 보편적인 현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 내수 시장도 성장하고 있다. 소비 주도층은 대략 100여 만 명에 이른다. 함경북도 청진시 수남시장, 양강도 혜산시장의 경우 운영 중인 매대는 4000여 개 수준. 또한 개인 투자의 활성화로 새로운 장삿거리가 늘고 있다. 이를테면 햄버거, 피자, 정육, 애완견, 손세차, 자전거 판매, 태양광 판매 등이다.

이런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이들은 북한의 신흥 부유층인 ‘돈주’들이다. 돈주를 구분하는 기준은 지역별로 다르다. 평양 이북 지역에서는 대체로 미화 1만 달러 이상을 갖고 있으며, 평양 이남 지역에서는 5000달러 정도 갖고 있는 사람을 돈주라고 부른다. 2006년 조사에서는 1만 달러 이상 갖고 있는 사람들을 돈주라고 지칭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온 바 있다. 9년이 지난 요즘엔 북한의 돈주들은 이보다 훨씬 많은 달러를 갖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북한에서는 유례 없는 유엔 경제제재 속에서도 현금 입·출금기 등 현대식 금융결제 수단이 다수 등장하고 있다.
한울 아카데미 제공
돈주들은 재일 교포, 화교, 무역이나 외화벌이 일군, 마약 장사꾼, 밀수꾼, 당 간부 부인 등 실로 다양하다. 남한 친인척이 송금해준 돈을 축적한 돈주도 적지 않다.

이들은 국가 경제가 정체 상태인 북한에서 유통 시장, 부동산, 금융, 임대, 고용 시장의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 시장 경제와 돈주의 성장은 다양한 사금융의 활성화로 이어진다. 자영업자, 사기업도 생겨나고 있다. 사기업은 형식적으로는 국영 기업에 속해 있지만 실제로는 개인 혹은 가족 단위로 운영된다. 중국 기업과의 합작으로 이런 사기업 활동은 더욱 활기를 띠고 있다.

북한에서 휴대전화는 돈주들의 자금 이동 수단으로 필수품이다. 또 탈북자들이 북한의 가족들에게 송금하는 수단으로 휴대전화가 절대적이다. 탈북자들의 연간 송금 규모는 2011년 기준으로 대략 1000만 달러로 추산됐으며, 5년 가까이 지난 현재 훨씬 많은 달러화가 북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한국에서 들어오는 달러화는 ‘한라산 줄기’라고 불릴 만큼 중요한 외화자금원이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난 4년간 김정은 정권은 일련의 규제 완화 조치를 했다.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으로 개인 금융을 허가하는 조치다. 지난 2002년의 7·1조치는 일종의 규제 개혁이었다. 이는 북한의 계획 경제에 대규모 변화를 일으켰으며, 북한 경제의 시장화와 사유화를 사실상 진전시키고 있었다. 저자는 이미 북한 경제가 시장경제로 이동하고 있다고 단언한다. 저자는 “1990년대의 자발적이고 방임적인 시장화를 거쳐 2000년대에는 시장경제 및 자본주의 원리에 따라 비교적 조직적인 경제 활동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저자는 이런 비즈니스의 변화가 북한의 긍정적 변화를 이끄는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