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에 속으로 웃는 글로벌기업들

“공정한 경쟁 기회될 것” 반겨
부정 꿈도 못꿔… 왕따금지까지
선물은 관행?관습수준서 허용
퇴직임원 업체와 거래 제한도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각계가 대책 마련에 분주하지만 예외인 곳도 있다. 일부 다국적기업이 주인공이다. 일찌감치 국내에서 윤리강령을 시행 중이어서 ‘김영란법 무풍지대’에 속한 상황이다.

글로벌 IT업체 A사 관계자는 15일 “김영란법 시행 후에도 지금과 달라질 게 없다”며 “워낙 오랫동안 미국 본사에서 정한 엄격한 가이드라인을 지켜온지라 이미 김영란법 수준의 업무 윤리가 사내문화로 자리 잡혀있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법인카드 사용 내역이 누구와 어디서 무얼 했는지 공개·보고되는지라 커피 한 잔 접대도 쉽지 않은 비즈니스를 해왔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김영란법 시행으로 국내 기업과 동일한 비즈니스 환경이 조성됐다고 내심 반기는 분위기다.

모든 외국계 기업 한국법인·지사 등이 이처럼 엄격한 윤리를 실천해온 것은 아니다. 일부 글로벌기업은 “현지 관행·법규에 따른다”며 해외법인에 재량을 주거나 윤리 가이드라인을 느슨하게 적용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외국 공무원에 대한 뇌물공여행위를 처벌하는 미국의 ‘해외부패방지법’이나 영국 ‘뇌물법’이 워낙 엄격해 대다수 글로벌 기업은 국내에서도 철저하게 윤리 규정을 지키는 편이다.

다국적기업의 엄격한 규제는 각 사가 전 세계 임직원에게 숙지시키는 ‘실천강령(code of conduct)’에 잘 드러난다.

반부패·이해상충은 물론 사내 따돌림 금지, 사이버 보안, 정치 참여 규정 등 다방면에 걸쳐 매우 상세한 지침을 정해놓았다. 대체로 자사 윤리 규정을 숙지하고 매사에 이 같은 규정을 위반하고 있는지 자문하거나 사내 법무부서 등에 문의하도록 했다.

주요 다국적기업 실천강령을 살펴보면 업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정한 의도를 지닌 뇌물은 당연히 전면 금지다. 선물은 대체로 관습·관행이 용인하는 선에서 허용되나 현금·현금등가물은 금지다. 업체별 허용 기준은 상이하다. 애플은 150달러 이상은 상급자 승인 후 선물을 주고받을 수 있다. 나이키는 부적절한 목적이 없는 경우 통상 허용 가능한 선물 및 호의를 200달러 미만으로 제한한다.

디즈니의 경우 ‘선물 교환은 사업 관행’이라며 상세한 기준을 만들어 놓고 있다. 연간 누적 75달러 이하 선물은 부담 없이 주고받을 수 있으나 그 이상은 경영감시 부서에 신고하는 등 업무 수행과정에서 허용 가능한지를 확인하도록 했다.

가장 엄격한 곳은 유통업체 월마트다. 거래비용을 높이는 선물·접대는 ‘상시 저가 판매’라는 회사 가치에 어긋나 “공짜 T셔츠도 주고받지 말라”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글로벌업체 상당수는 식사 비용에 대해선 따로 제한을 두지 않는 편이다. 본사의 엄격한 윤리규정을 두고 있는 한 외국계 기업 관계자는 “부서 예산의 한도 내에서 식사 비용은 자유로운 편”이라고 말했다. 다국적기업의 이해상충 방지 규정은 보다 더 엄격하다. 심지어 페이스북 등 다수 업체는 사내 연애·친척 근무 등을 금하지 않으나 상하관계이거나 업무상 관련 있을 경우 인사 부서 등에 이를 알리도록 규정해 놓고 있다. 또 월마트의 경우 퇴직 임직원이 납품업체에 근무할 경우 이해상충이 벌어질 수 있으므로 아예 1∼2년 동안 거래를 금지해 부정의 여지를 없애버렸다.

반면, 국내 대기업은 대다수가 윤리강령·행동규범 등을 만들어놓고 있지만 아직 크게 신경 쓰는 모양새는 아니다. 실천을 위한 상세한 가이드라인이라기보다는 “직무와 관련하여 공정성을 저해할 수 있는 어떠한 형태의 이익도 이해 관계자로부터 수수하지 않는다”식의 선언적 수준에 그친 곳이 많다.

박성준·김수미 기자 alex@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