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6-08-17 19:16:11
기사수정 2016-08-17 21:58:34
[지구 기온 상승 1.5℃ 내로 지키자] (17)새로운 해양 오염원 ‘미세 플라스틱’
“바닷속에 최대 51조 개의 미세 플라스틱 조각이 떠다니고 있다.” 지구의 70%를 차지하는 바다, 해양 면적 3억6105만㎢에 눈으로 보기 힘든 5㎜ 미만의 미세 플라스틱이 존재한다. 이에 대해 정확한 현황과 위해성이 파악되지 않았지만 최근 해양 생태계의 새로운 위협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영국에서 발표된 ‘작은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의 국제목록’ 논문을 보면 세계 바닷속에 최소 15조 개에서 많게는 51조 개의 미세 플라스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많은 미세 플라스틱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미세 플라스틱 새로운 해양오염 대두
17일 그린피스에 따르면 미세 플라스틱은 두 가지 경로를 거쳐 만들어진다. 우리가 흔히 쓰는 치약이나 세정제, 스크럽제 등의 생활용품에 작은 알갱이 형태로 사용된다. 이를 1차 미세 플라스틱 혹은 마이크로비즈(microbeeds·작은 알갱이)라고 부른다. 인간이 1차 미세 플라스틱이 포함된 제품을 쓰고 나면 이는 하수관을 타고 강과 바다로 흘러간다. 워낙 크기가 작기 때문에 하수처리장에서 잘 걸러지지도 않는다. 이렇게 바다로 간 미세 플라스틱은 플랑크톤이 먹이로 오인해 섭취한다. 이후 플랑크톤은 먹이사슬 관계에 따라 해양생물에 잡혀 먹히고 이 단계를 반복하다 보면 결국 미세 플라스틱을 섭취한 해양생물이 우리 식탁에 오르게 된다.
처음부터 완성된 플라스틱 제품이 해양 투기 등을 통해 바다에 버려지고 파도나 자외선에 의해 잘게 부서져 다시 미세 플라스틱이 되기도 한다. 지난해 2월 사이언스지에 실린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 관련 논문을 보면 2010년 세계에서 바다로 유입된 플라스틱 쓰레기는 최소 480만t에서 최대 1270만t에 이른다. 이렇게 버려진 미세 플라스틱은 바다 위를 떠다니기도 하고 해저 퇴적물이나 심지어 북극의 해빙에서도 발견된다.
가볍고 잘 썩지 않는다는 이유로 1950년대 이후 세계에서 사용량이 폭증한 플라스틱은 이제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작은 플라스틱 자체의 독성은 아직 과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 위험성을 경고한 연구는 많다. 해양 조류의 플라스틱 오염 관련 독일에서 발표된 연구논문을 보면 1962년부터 2012년까지 전체 135종의 바닷새 가운데 59%인 80종의 새가 플라스틱을 섭취했다. 북해의 양식 홍합과 대서양의 양식 굴에서도 미세 플라스틱이 발견됐고, 심해에 사는 황새치, 참다랑어, 날개다랑어, 바닷가재 등 다양한 해양동물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됐다는 보고가 잇따른다.
이 미세 플라스틱은 해양 생물에 물리적 상처를 입힐 수도 있고 장폐색과 식습관의 변화, 에너지 할당 감소, 성장과 번식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또 미세 플라스틱이 독성 화학물질에 붙어 이를 그대로 전달할 수도 있다. 플라스틱은 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P) 나일론 같은 석유화합물질로 만들어진다. 미세 플라스틱은 바다에 유출된 오염물질과 흡착해 새로운 환경오염물질이 될 수도 있다.
◆선진국 미세 플라스틱 사용규제 나서
국제사회는 미세 플라스틱의 위해성을 인식하고 규제에 나서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12월 상·하원이 만장일치로 연방차원의 규제법인 ‘마이크로비즈 청정해역법’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내년 7월부터 미세 플라스틱 사용이 전면 금지된다. 마이크로비즈는 치약, 보디워시, 스크럽제, 각질제거 화장품 등에 사용되는 미세 플라스틱을 말한다. 150㎖ 용량의 제품에 많게는 280만 개의 마이크로비즈가 들어가 있다.
스웨덴은 2018년 1월부터 화장품 등에 마이크로비즈 사용을 금지하기로 했고, 캐나다는 지난 6월 말 환경보호법의 유해화학물질 목록에 미세 플라스틱을 포함시켰다. 영국과 대만도 마이크로비즈의 사용금지를 추진하고 있다. 국제 시민사회도 국가와 기업에 미세 플라스틱 사용 금지를 압박하고 있다. 35개국 83개 시민단체가 모인 ‘비트 더 마이크로비즈 재단’이 결성돼 활동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성환경연대와 동아시아바다공동체 오션이 참여하고 있다.
◆정부, 관련 규제는커녕 실태파악도 못해
국제사회가 미세 플라스틱 규제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관할 부서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강병원 의원(더불어민주당)이 환경부에 국내 미세 플라스틱 규제 현황 등을 질의한 결과 “현재 미세 플라스틱을 담당하는 부서는 없으며 유해성이나 외국의 입법 사례에 대해 파악하지 못해 관계부처와 협의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답변이 나왔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 등 최근 잇따른 환경화학물질 사고 속에서도 미세 플라스틱은 규제 사각지대에 놓인 것이다.
지난해 인천대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해변의 미세 플라스틱 오염도는 일본, 브라질, 포르투갈, 미국의 해변보다 심각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이 2012∼2014년 전국 18개 해변을 조사한 결과 주로 남해안 9개 지역에서 세계 평균치보다 높은 미세 플라스틱이 확인됐다. 하지만 이는 주로 어구나 부표 등에서 발생한 부유 미세 플라스틱에 국한돼 화장품 등에서 발생한 마이크로 비즈의 실태는 파악되지 않았다. 해양수산부는 지난해부터 미세 플라스틱 환경영향을 조사하기 시작했지만 2020년에야 최종 결과가 나온다.
우리나라는 제14차 유엔 지속가능 개발목표 이행을 위해 2025년까지 해양 오염을 예방하고 모든 종류의 오염 물질을 감축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또 유엔환경계획(UNEP) 동아시아 해양조정기구 회원국으로 동아시아 바다와 해변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을 감축하는 데도 합의한 상태다. 김지우 그린피스 해양캠페이너(활동가)는 “아직 국내에서는 미세 플라스틱에 대한 정확한 정의도 없는 상태”라며 “정부가 나서 사용금지 규정을 만들고 기업들도 미세 플라스틱 대체제 사용을 확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그린피스 제공
조병욱 기자 brightw@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