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정(사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진단이다. 민주화와 더불어 사법부 독립이 실현됐지만 법조비리 사건과 전관예우 논란으로 여전히 몸살을 앓는 한국 법조계의 현실을 정확히 짚고 있다. 네이버문화재단은 ‘열린 연단 : 문화의 안과 밖’ 강연의 일환으로 박 교수가 오는 20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안국동 W스테이지에서 ‘법과 윤리’라는 제목의 특강을 한다고 18일 밝혔다.
박 교수에 따르면 민주화 이후 대통령 탄핵, 이라크 파병, 낙천낙선 운동, 국가보안법 존폐, 4대강 사업, 양심적 병역거부 등 사안들이 최종적으로 법원에서 매듭이 지어졌다. 정치권에서 결정되어야 할 문제들이 잇따라 사법 과정에 의해 결정되면서 최근에는 ‘정치의 사법화’, ‘통치의 사법화’ 문제까지 거론되고 있다.
이처럼 사법부의 독립성이 한껏 고양되고 외관상 ‘법의 지배’가 완벽히 실현되고 있는 듯하지만 여전히 숱한 문제가 남아 있다. 사법의 높은 문턱, 재판 지연, 불투명, 전관예우, ‘유전무죄 무전유죄’. 재벌에 대한 저자세, 법조 브로커 등이 그것이다. 많은 경우에 사법은 사랑과 존경보다는 미움과 비판을 받는 대상이다.
박 교수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왜 입법 정의나 입법 개혁보다 사법 정의나 사법 개혁이 더 많이 언급될까”라고 질문을 던진 뒤 “우리 경험 속에서 ‘법의 지배’의 마지막 모습이 ‘재판의 지배’로 각인되기 때문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어 “사법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법관들이 어떻게 양성되고 충원되는지, 그들이 어떤 가치 성향을 띠는지 등을 점검하는 일이 중요하게 되었다”고 진단한다.
과거 법관에게는 정확하고 풍부한 법률지식이 가장 중요했다면 로스쿨에서 해마다 1000명이 훨씬 넘는 법조인이 쏟아져 나오는 요즘은 법관의 윤리의식이 무엇보다 절실해졌다는 것이다. “오늘날 ‘법의 지배’는 그 유토피아적 요소를 잃어가고 있다”는 박 교수의 지적에선 홍만표·진경준 전 검사장,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등 유력 법조인들이 연루된 스캔들이 끊이지 않는 한국 사회의 후진성을 꼬집는 날카로움이 읽힌다.
박 교수는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법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이화여대 법대 교수로 재직하다 2004년 서울대 법대로 옮겼다. 한국법철학회장, 국무총리 행정심판위원회 위원,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위원, 법무부 감찰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고 현재 한국인권재단 이사장,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강연 참여를 원하는 이는 ‘열린 연단’ 홈페이지에서 직접 신청이 가능하다. 강연 후에는 영상과 원고 전문을 열린 연단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김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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