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벽화고분 변화상 ‘한 눈에’

전호태 교수, 발전상 분석 책 발간/ 시기·지역별 대표하는 10기 뽑아 고분벽화는 “종교·신앙의 세계를 담고 있는 동시에 무덤 주인이 살던 세계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 놓은” 그림이다. 그중에서 고구려 고분벽화는 “삼국시대 드넓은 영토를 통치했던 고구려의 시대상과 정신세계를 잘 보여주는 유물이다. 하지만 고구려가 멸망한 뒤 1000년 넘게 잊혔다가 대한제국이 선포될 즈음 벽화 속의 그림이 알려지면서” 관심을 끌게 됐다.

전호태 울산대 역사문화학과 교수가 전하는 고구려 고분벽화의 의미다. 그는 최근 발간한 ‘고구려 벽화고분’(돌베개)에서 고분의 발전 양상을 분석하며 벽화의 의미를 추적했다. 전 교수는 시기별, 지역별로 대표할 만한 10기를 뽑았다. 
안악3호분.

고구려 사람들은 시신을 넣는 널을 위한 방을 따로 마련하는 돌방무덤이 유행하자 고분 안에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4∼5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안악3호분(사진)과 덕흥리 벽화분은 초기 벽화고분으로 분류된다. 이 고분들의 벽화는 중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일상생활을 묘사한 듯한 화풍이 특징이다.

전 교수는 “무덤 주인이 현재와 큰 차이가 없는 세계에서 내세의 삶을 꾸린다고 믿었던 것과 관련이 깊다. 현세보다 내세에서 더 나은 생활을 하기 바라는 마음에서 인물을 과장되게 표현하기도 했다”고 분석했다.

중기 벽화고분으로는 분류되는 안악2호분, 수산리 벽화분, 쌍영총, 삼실총, 장천1호분 등은 불교와 전통신앙의 공존이 공통점이다. 불교의 여래(如來·완전한 깨달음을 얻어 자유로운 존재)가 주관하는 정토를 그린 그림과 음양오행론에 바탕을 둔 사신도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개마총, 진파리1호분, 통구사신총 등 후기 벽화고분은 북쪽의 국내성과 남쪽의 평양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 전 교수의 분석이다. 국내성의 고분벽화는 화려한 색상과 강한 필치를 사용했으나, 평양의 벽화는 부드럽고 온화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그는 “전성기의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동아시아를 관류하던 보편적인 문화 요소와 고구려적 개성이 함께 담겨 있다”고 소개했다.

강구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