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6-09-11 21:12:49
기사수정 2016-09-11 21:12:49
국립극단 연극 ‘로베르토 쥬코’
현대사회 타락·소통부재 고발
“니 아버지 상중이다. 나도 죽일 거냐.”
“엄마 무서워하지 마세요. 엄마 나 착한 아들이었잖아요.”
“난 절대로 니가 니 아버지를 죽인 사실을 잊지 않을 거야.… 여기 내 앞에 있는 니가 내가 낳은 아이 맞니?”
8일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 연습실. 어머니와 아들의 섬뜩한 대화가 이어진다. 공기는 무겁게 짓눌려 있다. 아들이 공포에 질린 어머니를 부드럽게 껴안는가 싶더니 예고된 불행처럼 목을 꺾어버린다. 저절로 눈이 옆으로 돌려진다. 연극 ‘로베르토 쥬코’(사진)의 한 장면이다.
국립극단이 23일부터 내달 16일까지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로베르토 쥬코’를 무대에 올린다. 프랑스의 장 랑베르 빌드와 스위스의 로랑조 말라게라가 공동 연출을 맡는다. 이날 공개된 연극의 일부는 바늘로 찔러대는 것처럼 날카롭고 폭력적이었다. 인물들은 칼날 위에 선 듯 위태했다.
‘로베르토 쥬코’는 프랑스 현대 연극의 대표 레퍼토리 중 하나다.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마리 콜테스가 1988년 썼다. 콜테스는 이 작품을 완성하고 1년 후 41살로 요절했다. 작가는 동명의 이탈리아 연쇄살인범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 유럽을 충격에 빠뜨린 살인마를 모티브로 하다보니 프랑스 일부에서는 초기 몇 년간 공연을 금지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세상의 모든 폭력이 스며있다고 평가 받는다. 현대사회의 타락과 모순, 난폭한 인간관계, 가족 분열, 소통 부재를 고발한다. 모두 15장으로 각 장이 다른 공간을 배경으로 한다.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이 작품은 1980년대만 해도 논리 없는 사건, 동기 없는 인물들로 인해 부조리주의적 극으로 여겨졌다”며 “악과 폭력이 선과 평화를 압도하는 오늘날, 불행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오히려 사실주의에 가까운 작품이 됐다”고 설명했다.
공동연출가 빌드와 말라게라는 국적은 다르지만 5년 전부터 스위스, 프랑스, 벨기에 등에서 함께 작업해왔다. 빌드는 “한국 배우들과의 작업이 환상적”이라며 “연기도 훌륭하지만 연극에 대한 이해와 책임감, 열정이 탁월하다”고 전했다. 쥬코 역은 백석광이 맡으며 이외에 김정은 황선화 김정호 우정원 등 국립극단 시즌 단원이 출연한다.
송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