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중국 갑질에 한국·대만 동병상련

대만 차이 총통 92공식 불인정
중국, 대만 여행 제한조치 압박
사드 찬성 한국도 길들이려 해
교묘한 중국 주변국 외교 진면목
대만과 한국은 정치적인 문제로 인해 중국인 관광객(유커·遊客)이 감소하는 문제를 고민하는 동병상련의 처지에 있다. 지난 17일 예후이칭(葉惠青) 대만 신베이(新北)시 부시장은 “우리는 어떤 시장(市場)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중국 방문길에 올랐다. 그는 유커가 해외로 대거 이동하는 중국 국경절(10월1일) 연휴기간을 앞두고 유커들을 유치하기 위해 중국을 찾은 대만 대표단의 일원이다. 국경절을 앞두고 유커 감소로 고심하는 대만 경제계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한 행보다.

중국 당국의 초청을 받아 방중한 대표단은 신베이시, 타이둥(台東)현 등 8개 시·현정부 지도자들로 구성됐다. 무소속 지도자들도 포함돼 있으나 대부분 친중국 성향의 국민당 소속이다. 대표단 구성원 모두가 ‘92공식’(九二共識·1992년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각자 명칭을 사용하기로 한 합의)을 수용하고 있다. 대만 독립을 추구하는 민진당과 달리 친중국 성향인 대표단은 중국공산당 최고지도부 일원인 위정성(兪正聲)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주석 겸 정치국 상무위원과도 만나 양안(중국과 대만)관계에 대한 이야기도 나눈다고 한다. 대만 대표단 방중이 지난 5월 차이잉원(蔡英文) 대만총통 취임 이후 냉각됐던 양안관계를 해빙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피어오르고 있다.

신동주 베이징 특파원
그러나 면밀히 들여다보면 ‘칼자루’를 쥔 ‘대국’(大國) 중국이 궁지에 몰린 대만을 압박하고 회유하는 모양새다. 중국은 차이 총통이 92공식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대만에 유커 제한 등 제재를 가해 왔다. 대만 언론에 따르면 올 들어 중국 당국의 대만 여행제한조치로 중국인 단체여행객은 차이 총통 취임 이후 4개월 연속 감소세다. 대만 여행사, 숙박업계 노조단체 일부는 타이베이 총통부 광장에서 차이 총통에게 92공식 인정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으로 국론이 분열된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듯하다. 중국의 제재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대만의 국론 분열 양상도 더 심화할 것이다.

중국은 이런 사정을 너무도 잘 안다. 중국은 대만의 방중 대표단 구성 과정에서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인사들만 초청했다. 대만 대표단은 대만으로 돌아가면 차이 총통과 민진당 공격에 나설 게 분명해 보인다.

중국이 대만을 다루는 방식은 낯설지 않다. 한·미의 사드 한반도 배치 결정 이후 중국은 한국도 이런 방식으로 길들이려 하고 있다. 중국에서 10여년간 발품을 팔며 한국 전통문화를 알려온 한 문화예술인은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중국인과의 문화행사가 거의 다 사라졌다”면서 “중국에서 활동하자니 먹고살 일이 막막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자니 대학 입시를 앞둔 아이가 걸려서 그럴 수도 없는 처지”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양국을 오가며 사업을 하는 중국 교민 중에는 “당장 먹고살기도 힘든데 사드는 무슨 사드냐, 사드 배치 전에 내가 먼저 굶어죽겠다”면서 한국 정부를 비난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중국은 사드의 한반도 배치에 반대하는 국내 전문가들을 중국 관변 매체에 등장시키고, 그들의 발언 중에서 자국에 유리한 대목만 잘라내 선전선동에 활용했다. 언론의 자유를 억누르고 있는 중국이 다양한 견해를 포용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한국을 상대로 여론전을 펴고 있는 현실은 중국의 북한 감싸기 행태와 오버랩되면서 대다수 한국인들의 반중 정서를 확산시키고 있다. 교묘하게 상대국의 국론 분열을 유도하는 중국의 행태는 입으로만 친성혜용(親誠惠容:친밀, 성실, 혜택, 포용)을 외치는 ‘주변국 외교’의 진면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유엔해양법협약 중재재판소가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서 중국에 제동을 걸었지만 광활한 시장을 무기로 ‘갑질’하는 중국의 횡포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국내 네티즌의 험한 댓글 속에는 대국(大國)인 줄 알았더니 ‘때국’이라는 등의 비아냥도 섞여 있다. 자기중심적인 중국은 ‘대국증후군’에 함몰된 나머지 스스로 ‘말로만 평화와 공영’을 외칠 뿐 행동은 달리한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하는 듯하다.

신동주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