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눈] 스푸트니크 쇼크와 북핵 쇼크

감정적 대처보다 안보 다지는 기회 삼아야 1957년 10월4일 소련이 세계 최초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올렸다. 미국은 경악했다. 과학기술에서 소련을 한 수 아래로 여겼던 터라 충격이 더 컸다. 미국은 두 차례 위성 발사에 실패한 상태였다. 미·소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냉전기에 들려온 스푸트니크 1호 발사 성공 소식에 미국 사회는 공포에 휩싸였다. 핵탄두를 장착한 소련 미사일이 미국 본토에 떨어지는 게 시간문제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스푸트니크 쇼크’다.

미국은 절치부심했다. 의회는 정부에 대책을 내놓으라고 촉구했다. 아이젠하워 정부는 1958년 7월 국가항공자문위원회(NACA)를 비롯한 관련 연구소를 통합해 대통령 직속 기구인 나사(항공우주국)를 설립했다. 미 의회는 국가방위교육법(NDEA)을 통과시켰다. 미·소의 우주개발 경쟁에 불이 붙었다. 


원재연 외교안보부장
소련이 1961년 4월 첫 유인 우주선 보스토크 1호를 발사해 다시 한 번 미국의 자존심에 상처를 냈다. 미국은 굴하지 않았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같은해 “10년 안에 인간을 달에 착륙시키겠다”면서 ‘아폴로 계획’을 발표하고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이 계획에만 모두 250억달러의 예산을 쏟아부었다. 당시 한 해 미 연방 예산의 4%에 해당하는 액수였다. 국가적 과학기술 역량을 한데 모으는 노력은 마침내 결실을 봤다. 1969년 7월21일 닐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내디딘 것이다.

스푸트니크 쇼크는 미국 수학 교육체계 전환의 계기도 됐다. 미국 사회는 우주경쟁에서 소련에 뒤처진 이유를 수학교육에서 찾았다. 실용적이고 쉬운 내용 위주이던 당시 미국 수학 교육으론 첨단과학을 이끌어갈 인재를 키워내기 어렵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미국은 초·중등학교에서 수학 교육을 크게 강화하는 쪽으로 교육과정을 바꿨다. 미국이 과학기술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된 건 우연이 아니다.

탄도미사일 발사에 이은 북한의 5차 핵실험은 우리에게 큰 충격이다. 북핵이 코앞의 현실이 된 것이다. 핵과 미사일 관련 분야 과학기술이 북한에 뒤처졌다는 점도 분명해졌다.

우리 대응은 어떤가. 신중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북한의 5차 핵실험 직후 우리 군 당국은 ‘대량응징보복(KMPR)’ 작전을 공개했다. ‘평양을 지도에서 사라지게 하는 개념’이다. 미덥지가 않다. 미군 도움 없이 우리 능력만으로는 실행하기 어려운 게 사실인 까닭이다. 정치권에서 제기하는 독자 핵무장론과 미군 전술핵 재배치론도 공허하게 들린다. 북핵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고려한 측면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제관계와 우리 여건 등을 살펴볼 때 현실적이지 않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은 어떤 이유로든 합리화될 수 없다. 평화를 위협하고 국제질서에 정면 도전하는 행위다. 단호하고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 하지만 감정과 분노를 앞세우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북한은 그제 신형 로켓엔진 실험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장거리 미사일 추가 발사가 예상된다. 6차 핵실험 준비도 진행 중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우리 군과 정보 당국은 아직 5차 핵실험 이후 정보에도 ‘깜깜이’다. 핵실험 방법과 사용된 핵물질 종류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스푸트니크 쇼크에 대응한 발빠른 개혁이 오늘날 슈퍼파워 미국을 만든 밑거름이 됐다. 문제의 본질을 꿰뚫고 과감하게 혁신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우리에게도 북핵 위협을 반전의 기회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래야 엄중한 안보 현실을 헤쳐나갈 수 있다.

원재연 외교안보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