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삶과 죽음 넘나드는 해녀들 이야기 '물숨'

고희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물숨’

“바다는 내 생명보다 더 귀한 존재야. 우리 식구 모두 먹여 살렸어. 나는 환생해도 또 해녀가 되고 싶어.”(차임화 해녀) “왜 그렇게 바다가 좋으냐고? 10살 때부터 85살이 되도록 한 번도 싫지가 않았어. 바다가.”(강산여 해녀)

영화 ‘물숨’(사진)은 숨을 멈춰야 사는 해녀들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제주도의 작은 섬 우도에서 예닐곱 살 때부터 글보다 물질을 먼저 배운 해녀들을 7년 가까이 취재한 기록이다.
우도에는 약 340명의 해녀가 산다. 가장 억척스럽다고 알려진 이들이다.

해녀 사회는 상군(上軍), 중군(中軍), 하군(下軍)이 존재하는 계급사회다. 누가 강제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물속에서 얼마나 숨을 오래 참을 수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상군은 수심 15∼20m의 깊은 바다에서 전복과 성게, 문어, 소라 등을 딴다. 하군은 3m 깊이의 바다에서 다시마 등 해초까지 함께 거두며 온종일 씨름한다. 이들은 평균 여덟 시간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수중작업을 한다.

해녀들의 숨은 날 때부터 정해져 있어 중군, 하군이 아무리 노력해도 상군이 될 수 없다. 이들은 자신의 숨 길이를 알고 있다. 마지막 숨에 이르기 전에 수면으로 올라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조금만 더 참으면, 저기 보이는 전복을 딸 것 같은 욕심이 생기면 마지막 숨을 넘어서게 된다. 이 순간 먹게 되는 것이 ‘물숨’이다.

제주 출신의 고희영 감독은 한평생 바다와 함께 한 해녀들의 다양한 사연을 담았다. 상군에서도 남보다 숨이 두 배나 긴 ‘해녀왕’ 김연희(58)씨는 하루 100㎏ 이상의 해산물을 안고 나와 ‘바다의 포클레인’이란 별칭이 붙었다. 중군인 김정자(85) 할머니의 딸은 18살 때 바다로 들어간 뒤 영영 나오지 못했다. 딸을 바다에 묻었지만, 물질하지 않으면 살 수 없어 오늘도 바다로 들어간다. 이들이 참은 숨은 쌀이 되고 남편의 술이 되며 자녀들의 책과 연필도 된다.

그러나 해녀들은 가족을 잃고 자신의 목숨까지 잃는다 해도 바다로 뛰어들 수밖에 없는 이유가 또 있다고 말한다. 대부분 고령인 해녀들은 땅에선 그저 병든 노인이지만 바다에서는 바다의 여인, 해녀이기 때문이다. 방에서 죽는 것보다 바다에서 생을 마치길 선호한다.  

문화재청은 2014년 3월 유네스코에 제주해녀문화의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했다. 오는 11월 에티오피아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보호 정부간위원회 총회에서 결정된다.

고 감독은 “제주도의 3500여 명 해녀 가운데 120명이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세상을 떠났다”며 “해녀들을 우리 마음 속에 먼저 올리고 이분들을 어떻게 계승 보존할 것인가 답을 찾는 것이 과제”라고 말한다.

‘모래시계’의 송지나 작가가 원고를 쓰고, 제주 출신의 재일교포 2세 양방언 감독이 음악을 담당했다. 우도의 아름다운 4계절 풍광은 보너스다.

김신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