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6-09-25 20:34:13
기사수정 2016-09-25 20:34:28
주철환 신임 서울문화재단 대표
스타 PD·스타 교수·인기 강사·15권의 저서를 낸 작가…. 주철환(61)씨가 걸어온 길은 화려하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 ‘우정의 무대’로 스타 PD 1호가 됐고 이화여대·아주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OBS 경인방송 사장, JTBC 제작본부장으로도 일했다. 지금도 여러 기업체와 기관에서 강연 요청을 받고 있기도 하다. 그가 지난 1일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서울시 문화정책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된 그를 최근 서울 용두동 서울문화재단에서 만났다. 공공기관장하면 연상되는 딱딱함은 없었다. 그는 특유의 언어유희로 힙합인이 랩을 하듯 말을 이어갔다. 한창 업무 파악에 바쁜 그는 “결혼을 처음 했을 때처럼 설레고 의욕이 넘친다”고 했다.
“즐거움이 없는 곳엔 안 가요. 건방지게 들릴지 모르지만, 60세가 넘은 후부터는 즐거운 일을 하고 싶었어요. 목구멍이 포도청인 식의 일은 하고 싶지 않았죠. (이곳에는) 재밌는 일들이 많잖아요. 그러니 지금 되게 설렙니다.”
그의 임명 소식에는 기대와 물음표가 교차했다. 그는 문화전문가이지만 순수·공연예술과 인연이 없다. 행정 경험도 일천하다. 서울문화재단은 시민의 문화생활과 예술가 지원·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화려하고 상업적인 방송계 생리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이런 우려를 조목조목 격파했다. 문화계 밑바닥에 대한 이해가 없지 않은지 묻자 그는 “MBC, JTBC에서 제가 금수저를 위한 방송을 한 게 아니다”고 운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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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철환 서울문화재단 신임 대표는 자신에게는 한없이 엄격하면서도 일에는 열정적인 낭만주의자였다. 그는 시와 음악을 짓고 틀에 얽매이지 않으려 하지만, 동시에 스스로 정한 몸무게를 유지하려 5층 계단을 오르내리고 금주 선언 뒤 절대 뒤 돌아보지 않는 실행력을 겸비했다. 남제현 기자 |
“방송은 가장 값싸게 대중을 위로하는 거예요. ‘우정의 무대’ ‘퀴즈 아카데미’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모두 배고픈 이들을 위로한 방송이라 자부해요. 저는 그들만의 리그를 싫어해요. 재능과 열정은 있는데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을 정말 도와주고 싶어요.”
그는 “잘 몰랐거나 반감 가진 사람도 끌어들이는 게 방송의 목적”이라며 “방송 경력자로서 제 아이디어, 창의성, 친화력으로 문화에서 소외된 이들까지 불러들이는 게 제 할 일이고 보람”이라고 말했다. 주 대표는 생활문화의 모범 사례이기도 하다. 그는 아마추어 시인이자 60여곡을 작곡하고 음반을 낸 음악인이다. 행정에 대한 소신도 확고하다. ‘아름다운 행정’을 펼치고 ‘경쾌한 리더’가 되는 게 그의 목표다. 주 대표는 “새롭고 아름답고 감동을 주는 게 예술이라면, 행정도 얼마든지 아름답고 새롭게 할 수 있다”며 “행정을 맡은 사람이 즐거운 주철환식 행정을 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전문가들이 즐겁게 역량을 발휘하되 제 나름의 아이디어를 제안할 것”이라며 “전 백가쟁명은 좋지만 강요는 싫고 강요당하는 것도 싫다”고 말했다.
“예전에 대표이사, 교장선생님과 일해봤는데 까닭모를 무게감이 불쾌했어요. 경쾌한 리더가 되고 싶어요. 폼 잡고 무게 잡는 대표는 싫어요. 그렇다고 경박, 경솔은 아니에요. 탈권위주의죠. 학생들에게도 얘기해요. 살아보니 안 좋은 게 세 가지더라. 권위주의 기회주의 냉소주의. 권위주의는 나이나 지위로 폼 잡으려는 거잖아요. 기회주의는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기회만 보는 거고, 냉소주의는 뭘 하려고 하면 ‘그게 되겠어’ 하는 거죠. 딱 싫어요.”
주 대표는 궁극적으로 즐거운 문화재단, 즐거운 문화도시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는 “즐거움은 재미와 감동 사이에 있는 것”이라며 “재밌으면서 때로는 뭉클한 조직이 됐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취임 초반이라 구체적 정책보다 소신을 풀어낸 그는 “적어도 3개월은 지나야 저 사람이 말뿐인 꽹과리인지 그 반대인지 알 수 있으니 지켜봐달라”며 “저는 아이디어가 많다고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갖고 있기에 하나하나 실현해보고 싶다”고 했다.
“이곳이 마지막 직장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 직장에는 내가 가진 기운을 쏟아야 하지 않겠어요. 마라토너처럼. 사람들이 저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어요. ‘저 사람은 낭만파다.’ 그런데 저는 낭만파이긴 하지만, 책임지는 낭만파에요. 여기에서 제가 제대로 잘 하고 가려 합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