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타워] ‘미르’처럼 민원처리 왜 못하나

하루 만에 재단 허가… 빽 없어도 그런 혜택 줘야 언론사에 근무하면서 10년이 넘도록 정부부처를 출입했다. 공직사회를 웬만큼 이해한다고 여기는 이유다. 이번 미르재단 설립허가 과정을 보면서 그동안 공직사회를 바라봤던 시각이 잘못 됐음을 알게 됐다. 공직사회를 말할 때 땅에 엎드려 움직이지 않는다는 ‘복지부동’이나 꼼짝하지 않으면서 권력의 향방을 살피기 위해 눈만 돌린다는 ‘복지안동’은 이제 사전 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죽은 단어’가 된 것 같아 기쁘기까지 했다.

민원인 입장에서 공무원을 상대하기 가장 어려운 것이 인허가 문제라고 한다. 인허가 민원은 여러 부서가 얽힌 데다 담당자 개인적인 판단이 좌우되는 일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류영현 문화부장
하지만 이번 미르재단의 설립과정을 보면 이제 우리 공직사회도 선진국 수준이 됐다는 기대(?)를 갖게 된다. 국감에서 드러난 미르재단 설립과정을 정리해 보면 이렇다. 2015년 10월 26일 문화체육관광부 법인설립 허가를 담당하는 주무관은 전경련으로부터 법인설립을 하고 싶다는 전화를 받는다. 세종청사에 근무하는 그는 서둘러 서울 용산에 있는 문체부 서울사무실로 간다. 당일 오후 5시 전경련 담당자로부터 서류를 받고, 저녁 8시7분 문체부 내부 시스템(나루)에 등록한다. 이어 8시 10분 사무관이, 8시27분 과장이 세종청사에서 각각 원격 결재를 한다. 이튿날 오전 8시9분 콘텐츠정책관 결재를 거쳐 오전 9시36분 재단 등록이 완료된다. 주무관은 이 과정에서 본인이 직접 미르재단 설립허가 검토 보고서를 작성한다. 오후 5시에서부터 결재가 진행되기 시작해 8시 7분까지 약 3시간 사이에 법인설립 허가 신청서를 시스템에 등록하면서 동시에 검토 및 보고서 작성까지 마쳤다는 결론이다. 너무 서두른 탓일까. 이 과정에서 ‘출연 재산 잔액 증명서’ 등 관련 서류는 챙기지 못했다. 그래도 법인설립 결재나 허가에는 문제될 게 없었다.

여기까지만 놓고 본다면 담당 공무원을 크게 탓할 일이 아니다. 인허가 업무를 신속히 처리하는 것은 지탄할 게 아니라 권장할 일이기 때문이다. 일을 하다 보면 약간의 흠결도 있을 수 있다.

그가 미르재단 설립허가를 위해 특별히 서울에 ‘출장 서비스’를 다녀온 것도 드러났다. 전경련이 전화로 법인설립 허가신청을 문의하자 서울사무소까지 달려왔다는 것이다.

이것도 심하게 탓할 일은 아니다. 민원 담당자의 입장에서 출장 중에 공교롭게 연락이 와서 민원을 접수하는 것보다, 연락을 받고 출장을 가서 민원서류를 접수한 것이 훨씬 바람직해 보인다. 재단법인 설립 허가증이 나오는 데 평균 시간은 21.6일이라는 통계가 있다. 앞으로는 여러 핑계를 대며 한 달 가까이 늦출 일이 아니라 미르재단 사례처럼 하루 만에 일사천리로 끝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됐으면 한다.

세종시에서 서울까지 찾아와 민원인의 설명을 듣고 5시간 만에 처리해주는 모범적인 인허가 업무처리가 모든 민원인에게도 똑같이 적용되길 기대한다. 오늘도 관공서에서 공무원 눈치를 살피는 힘없고 빽없는 사람들의 민원도 이처럼 적극적으로 처리해달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도 이런 기대를 하면서 뭔가 답답하고 불편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그동안 공직자들의 태도에 익숙해진 탓일까.

류영현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