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찬의 軍] '북한, 중국 향한 미국의 칼' 군사기지 괌의 실체는

 2016년 9월9일. 한반도는 ‘북한발(發) 충격’에 또다시 흔들렸다. 북한이 전격적으로 단행한 사상 취대 규모의 5차 핵실험은 올해 초 4차 핵실험 직후 강력한 대북 압박과 제재를 지속해온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8월5일 괌 앤더슨 공군기지에서 B-1B 폭격기가 이륙하고 있다. 미 공군 제공
한미 정부 당국은 북한에 강력한 경고메시지를 던지기 위해 미군 전략자산의 추가 전개를 결정했다. 이에 따라 미군은 9월13일과 21일 괌 앤더슨 공군기지에 주둔하던 B-1B 전략폭격기를 오산 공군기지로 전개했다. 13일 전개한 B-1B는 착륙하지 않고 바로 괌으로 돌아갔지만, 21일 전개한 B-1B 2대 중 1대는 오산 기지에 착륙해 머물다 돌아갔다. 미군은 지난 1월 6일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 B-52H 폭격기를 한반도 상공에 긴급 출격시킨바 있다.

이처럼 한반도에서 위기가 발생하면 수시간 내에 미군 폭격기들이 달려올 수 있는 것은 서태평양의 괌에 폭격기들이 주둔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관광지로 유명한 괌이 동아시아 주둔 미군의 핵심 전략기지로 탈바꿈하고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다.

◆ “괌은 북한, 중국 견제 위한 최적의 기지”

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하면 괌에서 한반도로 미군 전략폭격기가 출격하는 것은 2013년 3차 핵실험 이후부터 하나의 패턴이 되어가고 있다. 2013년에는 B-52H, B-2 폭격기가 출동해 북한의 추가 도발을 억제하는 무력시위를 벌였다. 이들 폭격기는 모두 이륙한 지 수시간만에 한반도 상공에 나타나 대북 군사적 압박의 첨병으로 활동했다.

괌 앤더슨 공군기지에 전개한 B-52H, B-1B, B-2 폭격기. 미 전략폭격기 3개 기종이 모두 괌에 배치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미 공군 제공
미군 폭격기가 수시간만에 날아올 수 있는 것은 괌이 한국에서 3000km, 북한에서는 약 4000km 떨어져 있어 미 본토보다 훨씬 가깝기 때문이다. 또한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 국가들과 중국이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남중국해 및 중국 본토와도 가까워 괌에 전략무기를 배치하면 북한과 중국의 움직임을 쉽게 견제할 수 있다.

괌 주둔 미 공군전력의 대부분이 집결한 앤더슨 기지의 역사는 한반도와 남중국해, 동남아 사태를 모두 대응할 수 있는 괌의 지정학적 특성을 잘 보여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을 공습했던 B-29 폭격기가 발진했던 괌 공군기지 사령관 로이 앤더슨(Roy Anderson) 준장의 이름에서 유래한 앤더슨 기지는 6.25전쟁 당시 군수물자 수송 기지로 쓰였다.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65년부터 1973년까지 월맹군과 베트콩의 병참선을 폭격한 B-52 폭격기 발진기지로 활용됐다. 장거리 공대지 순항미사일이 대량으로 비축되어 있고, 글로벌호크 고고도 무인정찰기와 F-15, F/A-18 등 전투기를 비롯해 B-1B, B-52H, B-2 등 전략폭격기가 앤더슨 기지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F-22 스텔스 전투기의 운영도 가능하다. 때문에 한반도 유사시 대북 선제공격의 핵심 기지로도 평가된다. 

미 해군 핵잠수함이 기지에 입항하고 있다. 미 해군 제공
전략폭격기가 괌 주둔 공군력을 상징한다면 핵추진 잠수함은 괌에서의 미 해군력을 대표한다. 아프라 해군기지에는 미 해군의 공격원잠들이 머물고 있으며, 이들은 남중국해와 한반도 근해를 비롯한 동아시아의 해저에서 비밀작전을 수행한다. 이 기지에는 유사시 미 핵항모의 기항도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괌 북부의 ‘사이트 아마딜로’에는 북한의 무수단 중거리 탄도미사일(사거리 3000km)을 요격할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1개 포대가 배치되어 있으며, 일본 오키나와 주둔 해병대 5000명과 그 가족 등 1300명도 2022년부터 괌으로 이전할 계획이다.

괌에 미 해공군력이 집결하면서 북한과 중국은 괌 기지를 미국이 자신들에게 겨눈 칼로 인식하고 있다. 북한은 B-1B 폭격기가 한반도에 전개한 직후인 22일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만약 미국이 B-1B 따위를 계속 우리 상공에 끌어들이며 군사적 도발의 위험도수를 높인다면 우리는 도발의 본거지 괌을 아예 지구상에서 없애버리고 말 것”이라고 위협했다. 북한이 보유한 무수단 미사일은 괌을 공격할 능력을 갖추고 있어 한미 양국은 북한의 위협을 실질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고 보고 있다. 괌에 사드를 배치한 것도 무수단 미사일에 위협을 느끼는 괌 주민들과 군사시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2015년 10월 미 핵항모 로널드 레이건이 동해상에서 한국 해군과 연합훈련을 펼치고 있다. 미 해군 제공
중국은 남중국해 파라셀군도(서사군도), 스프라틀리 군도(남사군도)의 암초를 매립해 군용 비행장과 레이더 기지를 설치한데 이어 2012년 필리핀과 대치한 끝에 실효지배에 나선 스카보러 암초(황엔다오) 매립을 시도하고 있다. 스카버러 암초에 활주로를 갖춘 기지를 건설하면 중국 공군의 활동 범위가 1000㎞까지 늘어날 수 있고, 조기경보레이더 기지를 지을 경우 괌이 감시범위에 들어간다. 한 군사전문가는 “남중국해를 ‘중국의 내해’로 만들어 괌에서 전개할 미 군사력을 저지하려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 괌의 군사기지화 속도 더 빨라질 듯

미국 정부와 군 입장에서 괌은 동아시아에서 미국과 동맹국을 방어하는데 최적의 기지다.

한반도와 중국 본토, 남중국해와 가까운 미국의 자치령인만큼 일본 오키나와 주일 미군 기지처럼 타국과의 협상을 하지 않아도 군사력의 출동과 기지 증설이 가능하다. 주일미군 기지 주변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소음과 범죄 등 각종 민원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 일본 주민들에게 지급해야 할 피해 배상금과 법적 소송 등도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지구 면적의 50%를 관할하는 미 태평양사령부의 군사적 부담을 덜어주는 지정학적 이점도 있다. 하와이나 미국 서해안에서 함대나 전투기가 동아시아 지역으로 출격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괌에서는 몇 시간에 불과해 ‘거리에 따른 장애’를 쉽게 극복할 수 있다. 이는 신속 대응을 중시하는 미군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괌의 군사기지화는 필리핀의 태도에도 영향을 받고 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은 전임자에 비해 중국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자국에 주둔하는 미군의 철수를 요구하고 있다.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세력 확장을 견제하는 ‘항행의 자유’작전을 펼치고 있는 미국 입장에서 필리핀 기지는 중국 견제 작전을 수행하는 미군 함정과 정찰기를 지원하는 전투기, 함정 등을 사전에 배치할 수 있는 요충지다. 이러한 중요성을 갖고 있는 필리핀 기지를 잃을 경우 그 기능은 대부분 괌이 떠맡아야 한다. 

태평양 상공을 비행중인 B-52H 폭격기. 미 공군 제공
여기에 미군 범죄에 따른 대응책과 주일 미군기지 개편에 따른 오키나와 주둔 미 해병대의 이동까지 겹치면서 괌의 군사기지화가 빨라지고 있다. 오키나와 주둔 미 해병대는 한반도 유사시 신속대응군 형태로 투입되는 미 지상군 전력의 선봉이다. 따라서 한반도와 가장 인접한 기지에 주둔해야 하지만 제주도보다 작은 섬에 주일미군의 절반이 주둔하다보니 현지 주민의 반발이 거세 괌으로 이동하는 방안이 추진중이다. 미 해병대까지 괌으로 이전할 경우 미 육해공군 전력이 모두 괌에 집결하는 셈이다. 여기에 미일 동맹 체제가 변화하면서 주일미군의 전력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면서 부대 재배치와 병력 이동도 예정되어 있다. 이는 괌의 군사화를 더욱 촉진한다.

괌의 군사기지화가 진행되면서 부작용도 발생한다. 1898년 괌이 미국의 식민지가 된 후 1950년 미국 시민권을 얻은 16만5000여명의 현지 원주민들은 괌 면적의 28%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상황에서 군사기지화가 확대되자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일부 괌 주민들은 미군이 괌 주민들의 정치적 자주권과 문화적 정체성을 유린하는 침입자라고 비판한다. 미군 가족과 현지 주민들이 분리된 교육 체계, 미군에게만 할인되는 식료품과 가솔린 등 상품 가격에 대한 불만, 미군이 관사 이용으로 부동산과 주택 가격을 불공정하게 왜곡하고 환경오염, 민간, 공공용지 접근 제한 등을 초래한다는 지적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관광과 미군 외에 경제적 가치가 없는 괌의 특성 때문에 군사기지 확대를 찬성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데다 중국과 북한을 견제하기 위해 괌 주둔 전력을 증강하려는 미국 정부의 움직임도 지속될 것으로 보여 괌의 군사기지화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