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화 키우는 정권

권력 핵심부 연루 의혹들 난무
쌓이다 터지면 정권, 대선 위험
국민적 의혹 해소 타이밍 중요
박 대통령 냉정·원려 필요한 때
044-200-7621, 7622. 국민권익위 ‘청탁금지제도과’ 전화번호다. 김영란법 유권해석을 전담하는 제도과는 질문을 받고 답해주는 곳이다. “통화량이 많아 연결이 어렵습니다.” “지금은 통화 중입니다.” 최근 한 주 두 번호로 수십통을 걸었으나 ARS 기계음만 들었다. 법적용 대상자는 400만명. 0.01%가 몰려도 권익위 전화는 먹통이다.

제도과 인원은 다른 부처 파견 3명(보조 등 2명 제외)을 포함해 12명. 7000건의 인터넷 문의·민원 처리를 도맡아 밤을 새우다시피 한다. 권익위는 73명 증원을 요청했으나 행정자치부는 10분의 1도 안 들어줬다. 가랑이 째지는 권익위. 남 일로 보는 기타 부처. 답답한 국민. 새 법 안착을 위해 정부 역량을 집중해야 할 골든타임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청렴 대한민국으로 가는 길은 멀어 보인다.


허범구 논설위원
박근혜정부가 국민을 애먹이는 게 이뿐이겠는가. 지진·태풍 때 재난문자 늑장 발송으로 피해를 키운 국민안전처. 한진해운 물류대란을 방관한 경제부처, 사법정의를 망가뜨린 검찰·법원 등등. 공직사회 기강은 풀어질 대로 풀어졌다. 민원인을 꺼리는 공무원 복지부동은 김영란법까지 악용하고 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공자는 논어에서 “자신(위정자)이 올바르면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저절로 시행되고 자신이 올바르지 않으면 명령을 내려도 시행되지 않는다”고 했다. 집권세력 상층부는 온갖 의혹에 휘말려 도덕성을 의심받고 있다. 미르·K스포츠재단 악재는 메가톤급이다. 의혹이 샘솟고 등장 인물이 빵빵하다. 박근혜 대통령 ‘비선 실세’로 지목된 최순실씨. 최씨와 가깝다는 ‘문화계 황태자’ 차은택씨. 대기업 모금 연루 논란의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누구라도 걸리면 치명타다. 이들 대신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이 어제 국정감사에서 혼났다.

친박 거물 최경환 새누리당 의원은 취업 청탁 혐의를 받고 있다. 여권 실세 사법처리설도 나돈다. 지난 총선에서 대기업 자금을 받아 최고위층에 찍혔다는 내용이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문제도 남아 있다.

이명박(MB)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인 2012년. MB의 멘토(최시중)와 최측근(박영준), 친형(이상득), 수족(김희중)이 비리 사건으로 5∼8월 줄줄이 구속됐다. MB는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을 누구보다 믿었기에 충격이 가장 컸다고 한다. 김씨는 재직 중 저축은행 돈을 받았다. 박 대통령은 ‘윤창중 파문’ 당시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다. MB도 그랬을 법하다. 최·박·이 일탈은 2007년 대선 때다. MB는 5년간 몰랐을까. 쉬쉬하다 막판에 정리한 걸까. 어쨌든 MB는 운이 좋았다. 대선 코앞에서 측근 비리가 연쇄 폭발했으나 정권교체로 이어지지 않았다. MB와 딴판이고 강력한 후보가 있어 가능했다. 2017년엔 어떨까.

박 대통령은 의혹마다 일축하고 있다. “비방과 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발언”이라는 인식이다. 그제 국무회의에서도 무시했다. 민심은 다르다. 진상규명이 필요한 의혹들이 쌓이는 걸로 본다. 박 대통령 지지율은 취임 후 최저치인 29%로 떨어졌다.

사회 무질서에 관한 ‘깨진 유리창 이론’이 있다. 깨진 유리창을 방치한 건물은 관리 포기로 여긴 행인들의 돌팔매를 맞는다. 시간이 지나면 나머지 유리창도 깨지는 결과를 빚을 수 있다. 쓰레기통 옆에 떨어진 걸 안 치우면 쓰레기 더미가 된다는 거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다”며 경제활성화의 타이밍을 강조했다. 의혹 해소도 마찬가지다. 비박계는 “의혹을 털고 가야 한다”고 아우성이다.

현재권력의 위기는 미래권력의 위기다. 김무성·유승민 의원 등은 서서히 쓴소리를 내고 있다. 위험을 감지한 ‘차별화’ 몸짓이나 미약하다. 박근혜 레이저를 감당하기 벅찬 게 지금 여당 잠룡의 처지다. 이들 기를 꺾는 의혹 뭉개기는 이미 대선에 악효과를 미치고 있다. 이러다 내년에 비리가 한꺼번에 터지면 대선은 비관적이다. 보수세력이 우려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박 대통령의 냉정, 원려를 바라는 게 보수층 다수의 심정이다.

허범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