잦은 지진이 영남권 주민들의 생활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다.
최근 경주에서 사상 최악의 규모 5.8 지진이 일어난 이후 한 달 동안 진동을 뚜렷이 느낄만한 여진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여진이 일상화하면서 지역 주민들의 공포는 잦아들지 않고 오히려 증폭되고 있다.
이런 불안감은 주민들의 사고와 태도는 물론 일상의 풍경까지 변화시켰다. 벽에 걸린 액자는 방바닥에 내려놓고, 여차하면 즉시 피난할 수 있도록 지하주차장 대신 지상이나 도로변에 주차하고 있다. 비상 배낭을 싼 사람들도 크게 늘었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스트레스를 인정하되 지나친 공포감에 집착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지진에 대비한 계획을 세우고, 그에 맞는 예행연습을 해보는 것이 심리적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진동 느낄만한 여진 일상화…주민들 불안감 ↑
경주와 인근 대구·울산·부산의 주민들에게 있어 이제 지진은 일상의 한 부분이 됐다. 실제로 지진은 이 지역 생활상을 바꾸고 있다.
경주와 인접한 울산시 북구의 한 아파트에 사는 김모(35)씨는 이제 지하주차장에 주차하지 않는다. 지하 4층까지 있는 주차장은 공간도 넉넉하고 이용에 불편함도 없지만 비좁은 지상에 차를 댄다.
한 달 전 5.8 규모의 경주 지진 때 차를 몰고 대피하다가 한꺼번에 나가는 차들 사이에 지하주차장에 갇혀 발을 동동 굴렀던 경험 이후로 생각을 바꿨다. 김씨는 지진이 나면 즉시 도로로 나가 안전한 곳으로 대피할 수 있기 때문에 지상에 차를 대기로 했다.
그는 "경주지진 때 주차장 출구로 몰리는 차들 사이에서 옴짝달싹 못 하며 '지하에 갇히는 것 아닐까'하는 공포를 느낀 후로는 지하주차장 이용이 꺼려진다"면서 "매일 밤 주차장 대신 도로변에 주차되는 차량이 30∼40대는 될 것"이라고 밝혔다.
부산시 남구 대연동에 사는 최모(35)씨는 △아기 기저귀 사흘치 △2리터짜리 생수 1개 △건빵 △비옷 등으로 꾸린 여행용 가방을 현관문 옆에 비치했다. 김씨 부인은 국민안전처가 보내는 재난문자가 수신되지 않자 휴대전화 교체도 고민하고 있다.
최씨는 "조만간 가방에 필수 물품을 더 추가할 계획"이라면서 "아파트단지 안에 초등학교가 있어 피난이 쉽고, 집도 11층으로 초고층이 아니어서 계단으로 이동할 때 큰 부담이 없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거리"라고 말했다.
부산시 해운대구의 아파트 33층에 사는 박모(40)씨는 침대 주변에 걸려있던 액자를 모두 치웠다. 박씨는 "서예 작품을 좋아해서 액자에 작품을 많이 넣어 걸어두었는데, 지난번 지진 때 작품들이 떨어질 뻔했다"면서 "자고 있는데 액자가 떨어지면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에 모두 치웠다"고 말했다.
◆지진에 대한 크고 잦은 공포, '상상지진' 증세 시달려
이처럼 최악의 지진과 끊이지 않는 여진은 이 지역 주민의 심리에 큰 생채기를 남겼다. 지진에 대한 크고 잦은 공포는 마치 '상상임신'과 원리가 비슷한 '상상지진' 증세를 낳기도 한다.
지진 공포를 겪은 후 실제로 몸이 흔들림에 민감해진다거나 혹은 진동이 없는 데도 진동이라고 착각하는 사례는 모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증상의 하나인 '각성현상'에 해당한다.
외상(지진)과 관련된 자극에 민감해지면서 작은 반응에 크게 반응하게 되며, 일반적인 자극과 재난 상황을 분별하는 능력을 잃고 공포가 쉽게 사라지지 않아 아예 지진이 일어났다고 착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심리적 어려움을 극복하려면 역설적으로 현재 상황이 스트레스로 작용하며, 그로 말미암아 불안이나 슬픔 등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부터 인정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그 후에는 생존과 안전을 위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계획을 준비하고, 그에 맞춰 예행연습을 하는 것이 심리적 안정에 도움이 된다. 지진 관련 정보를 지속해서 찾아보는 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으며, 시간을 정해두고 검증된 정보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하고 있다.
지진에 대한 불안감은 △성별 △연령 △과거 외상경험 △재난 노출 시간이나 근접도 등에 따라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날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 즐기는 취미나 운동, 편한 사람과 보내는 즐거운 시간 등이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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