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6-10-16 23:18:21
기사수정 2016-10-18 10:22:03
2년 전 국방부를 출입하던 때 일이다. 국방부의 과장급 이상 직원과 출입기자 간 축구경기가 있었다. ‘친목도모’를 위한 경기에 당시 백승주 국방차관도 몸소 출전해 전반전을 뛰었다. 경기는 엎치락뒤치락하다 2대 2 무승부로 끝난 것으로 기억한다. 함께 땀 흘린 양팀 선수들은 ‘이기지 못해’ 아쉬워하기보다 ‘적당한 스코어’에 만족해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생각하지도 못한 ‘사태’가 벌어졌다. 경기 후 대변인실 관계자가 기자를 찾아와 “차관님이 경기 중에 상대편 선수에게 부딪혀 피를 보셨다”며 “누가 그랬는지 찾으라고 해서 확인 중인데 혹시 기자님 아니시냐”고 물었다. 백 차관이 다친지도 몰랐던 터라 “나는 그런 적이 없다”고 답했다.
그런데 며칠 지나 대변인실에서 다시 “기자님이 (차관님을 다치게) 한 것으로 해주면 안 되겠느냐”며 생뚱맞은 부탁을 했다.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나 싶어 알아본 상황은 이랬다. 경기 당일 기자단의 선수 부족으로 대변인실 직원이 기자팀으로 뛰었는데, 해당 직원이 ‘차관 테러 가해자’가 돼 책임을 뒤집어쓸 판이었다. ‘그러니 실체적 진실과 상관없이 기자들 중 누군가가 대신 책임을 떠안아 주면 문제가 정리될 수 있다’고 대변인실은 판단한 것 같다. 그런 제안도 황당했지만 경기 도중 자신을 다치게 한 사람을 기어이 찾아내겠다는 백 차관의 태도가 더욱 당혹스러웠다.
‘아니, 얼마나 다쳤다고 아직도 그 사람을 찾고 있나’라고 어이없어 하면서 “이게 최선이냐”고 대변인실에 물었다. 의심을 받던 직원이 가해자로 보고되면 차관에게 ‘미운털’이 박혀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는 눈치였다. 결국 대승적(?) 차원에서 부탁을 들어주기로 하고 얼마 후 만찬 자리에서 만난 차관에게 “제가 그랬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허위자백을 했다. ‘미제사건’은 그렇게 마무리됐다.
해묵은 이야기를 굳이 끄집어낸 것은 여당 소속으로 20대 국회의원이 된 백 차관의 국정감사 활동을 보며 느낀 ‘데자뷔’(기시감) 때문이다. 국회 국방위원인 백 의원은 방송인 김제동씨의 지난해 발언을 문제 삼아 ‘군을 조롱했다’고 그를 국감장 증인으로 불러 매섭게 추궁하려 했다. 김씨가 “군 복무시절 4성 장군 부인에게 ‘아주머니’라고 불렀다는 이유로 13일 동안 영창에 수감됐다”는 에피소드로 관객을 웃겼는데, 이는 허위사실로 해당 장성과 군의 명예를 훼손한 행위라고 하면서다. 이에 김씨가 “웃자고 한 얘기에 죽자고 달려들면 답이 없다. 부르면 국감장에 나가겠다”고 반박하며 논란이 확산됐지만 김씨의 국감증인 채택은 없던 일이 됐다.
김씨를 두둔할 생각도 없고, 정말 관객을 웃기려고 지어낸 얘기라면 부적절했다고 본다. 하지만 20년도 더 지난 김씨의 군 복무시절을 따지는 문제가 북한의 핵실험 도발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논란, 방산비리 척결, 열악한 병영문화 개선 등 시급한 국방 현안보다 앞서는 것이 바람직했을까. 한국국방연구원(KIDA) 출신으로 국방차관까지 지낸 그에게 국민이 기대했던 활약상과는 거리가 먼 듯싶다. 초선 의원의 첫 국감이니 그랬다 치고 다음부터는 중차대한 국방 현안에 전문성을 제대로 발휘해 주길 바란다. 참, 위에 공개한 일화는 기자가 경험한 사실이니 혹여나 ‘죽자고’ 달려드셔도 됩니다.
김선영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