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폐기물 몰래 반입… 대전시민 뿔났다

원자력연 26년간 ‘쉬쉬’… 비난 거세
유성 인근 아파트 밀집지 ‘발칵’
연구원 “해당 물질은 공개대상 아냐”
대전시장·5개 구청장 오늘 긴급회의
한국원자력연구원이 들어선 대전 유성 일대가 방사능 공포로 뒤숭숭하다.

고준위방사성물질인 원자력발전소 사용후 핵연료가 무려 26년여간 원자력연구원에 시민들 몰래 반입된 사실이 최근 알려지면서 대덕테크노밸리 등 주변 아파트 밀집지역은 발칵 뒤집혔다.

유성 핵안전시민대책본부 등 시민단체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는 가운데 권선택 대전시장과 허태정 유성구청장도 핵폐기물에 대한 안전보관 대책을 정부에 요구하고 나섰다.

시민들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것은 1987년부터 2013년까지 21차례에 걸쳐 반입된 원자력발전소의 사용후 폐연료봉 1699다발(약3.3t)이다. 고리와 울진, 영광 원자력발전소에서 배출된 것으로, 사용 중에 손상된 폐연료봉도 309다발이 포함됐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이 이곳에 공개적으로 보관돼 왔지만 고준위방사성물질까지 들여온 사실이 알려진 것은 처음이다.


이들 폐연료봉은 연구용 경수로가 가동 중인 원자력연구원에 주로 연료개발이나 성능 평가, 연료봉 손상원인 분석 등의 목적으로 반입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원자력안전법이 규정한 수칙에 따라 지금까지는 안전하게 보관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은 원자력발전소를 운영하는 한국수력원자력의 내부 규정에 의해 외부 이동이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연구원 측은 국가 차원의 연구 목적으로 반입된 만큼 법적하자는 없다는 입장이다. 해당 물질이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이 아닌 ‘3급 비밀의 사용 중 연료봉’이어서 공개 대상도 아니라고 밝혔다.

하지만 핵안전시민대책본부 등은 “이미 2만9728드럼의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이 원자력연구원과 한국핵연료주식회사에 저장됐고, 이를 경주방폐장으로 이송하는 데만 향후 20년 이상 소요돼 시민들이 극도의 불안감을 갖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그보다 위험한 고준위물질을 오랫동안 몰래 들여온 것은 기만행위”라며 비난하고 있다.

더욱이 내년부터 정부가 고준위방사능폐기물을 공개적으로 대전에 반입키로 해놓고 시민들을 버젓히 속여온 데 대해 더 이상 핵 안전을 신뢰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정부는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기본계획에 따라 내년부터 원자력연구원을 통해 사용후 핵연료에 대한 재활용(파이로 프로세싱) 기술개발을 본격화할 예정이다.

대전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원자력연구원 반경 2㎞ 안에 3만8000명이 살고 있다”면서 “중저준위폐기물이 고리원전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양이 쌓여 있는데, 고준위물질까지 가세한다면 지진 등 안전사고가 발생할 경우 많은 시민이 고스란히 피폭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허태정 유성구청장은 “26년간 단 한 번도 주민에게 알리지 않고 대전을 고준위폐기물 저장소로 변질시켰다”고 비난하고 “사용후 핵연료를 즉각 반출하고 주민과 지자체가 폐기물 이송정보를 상시 공유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유성구의회와 핵안전시민대책본부도 성명을 내고 파이로프로세싱 연구계획 중단과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의 조기이전, 핵시설에 대한 전면적인 3자 검증 등을 요구했다.

권선택 시장과 대전지역 5개 구청장도 20일 긴급회의를 열어 공동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사용후 핵연료는 정부가 1983년부터 관리시설 건설을 추진했으나 주민 반발 등으로 부지선정이 9차례나 무산됐다. 지금까지 배출된 42만5000여다발은 대부분 원자력발전소 안에 보관 중이다.

2019년 월성원전을 시작으로 2038년이면 모든 발전소의 저장용량이 포화상태에 이를 전망이다.

대전=임정재 기자 jjim61@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