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면 캘수록 '순실의 나라'… 늑장 '특수본' 제역할 해낼까

검찰, 9년 만에 ‘특별수사본부’ 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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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실세 의혹으로 정국의 ‘태풍의 눈’이 된 최순실(60·최서원으로 개명)씨를 겨냥해 검찰이 특별수사본부까지 가동하며 대대적 수사에 착수했다.

의혹이 제기되고 한 달이 넘도록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에 미온적이다가 정치권의 특별검사 도입 소식에 갑자기 부산을 떠는 것이란 회의적 시선 속에서 검찰이 특검 개시에 앞서 최씨와 관련한 온갖 의혹을 풀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최순실씨 국정 농단 의혹’ 특별수사본부장에 임명된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이 27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회의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수사에 임하는 각오, 향후 수사 계획 등을 밝히고 있다.
하상윤 기자
27일 특별수사본부장에 임명된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은 “의혹이 굉장히 증폭돼있는 만큼 성역 없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실체적 진실 규명에 힘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에서 최강의 수사력을 자랑하는 특수1부 소속 검사들을 전격 투입하는 등 수사 의지를 과시했지만 ‘정치권이 특검 도입에 사실상 합의하면서 부랴부랴 면피성 대책을 내놓은 것’이란 비난도 일고 있다.


검찰 관계자가 27일 정부세종청사 내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콘텐츠산업실 콘텐츠정책관실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콘텐츠정책관실은 2015년 미르재단 설립 인가를 담당한 부서다.
세종=연합뉴스
지금까지 검찰 안팎에서는 ‘살아있는 권력’을 상대로 눈치보기식 수사를 하며 시간만 끌고 있다는 지적이 줄기차게 이어졌다. 지난 5일 미르·K스포츠재단 관련 고발 사건을 특수부 대신 형사부에 맡긴 검찰은 배당 후 보름이 지난 15일에야 처음으로 참고인 소환조사를 실시했다. 강제수사의 시작으로 볼 수 있는 최씨 관련 압수수색은 고발장이 접수된 지 한 달 만에 이뤄져 ‘늑장수사’라는 비판을 들었다.

그때마다 검찰은 “언론 기사만 갖고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할 수는 없지 않으냐”고 해명했지만 최씨와 관련한 온갖 의혹이 화수분처럼 터져나오는 상황에서 ‘증거인멸을 막기 위해서’라는 명분 아래 전격적인 압수수색을 벌인 다른 사건과 비교하면 소극적이었던 게 사실이다.
박근혜 정권의 비선실세인 최순실씨가 직접 찍은 본인의 사진들. JTBC 뉴스는 이 사진들이 최씨가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태블릿PC에 저장돼 있다고 보도했다.
JTBC 홈페이지 캡처



최씨와 관련해 가정 먼저 제기된 의혹은 안종범 대통령 정책조정수석이 미르·K스포츠재단을 통해 최씨 소유 회사인 더블루K와 비덱코리아에 일감을 몰아주는 등 부당한 특혜를 제공했다는 의혹이다. 이후 부동산 투기 의혹, 청와대 문건 유출 의혹, 박근혜 대통령 옷값 대납 의혹 등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심지어 최씨가 2013년 10월 서승환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이 청와대에 보고한 ‘수도권 복합생활체육시설 대상지’ 관련 자료를 미리 받아 이를 땅투기에 활용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진 상태다.


최순실씨가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태블릿PC에 저장된 각종 파일들. JTBC는 지난 24일 방영한 뉴스에서 “최씨가 사무실을 비우면서 건물 관리인에게 처분을 맡긴 PC에서 박근혜 대통령 연설문 초안 등 44건을 포함해 모두 200여건의 문건 파일을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연합뉴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들이 27일 최순실씨의 국정개입 및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과 관련해 정부세종청사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콘텐츠산업실 콘텐츠정책관실 등에서 압수한 물품을 차량에 옮기고 있다.
세종=연합뉴스
검찰은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최씨의 청와대 문건 유출과 관련해 핵심 당사자로 거론되는 조인근 전 연설기록비서관, 정호성·안봉근 당시 제1·2부속실장을 수사해야 하는 처지다. 이를 위해 검찰 안팎에서는 ‘청와대 비서관·행정관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검찰이 빠른 시일 내에 압수수색에 나설 수 있을지, 관련자 소환에 착수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검찰 수사를 ‘컨트롤’하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박 대통령 곁에 여전히 건재하다. 검찰 수사 내용은 법무부 등을 통해 우 수석에게 보고되며 결국 박 대통령한테도 실시간 보고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박 대통령 최측근들을 모조리 수사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검찰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김건호 기자 scoop3126@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