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6-10-28 18:31:18
기사수정 2016-10-28 22:04:45
비선실세 국정농단 의혹에도 / 검찰, 문건유출 경위에만 초점 / 김수남 총장이 당시 수사 지휘
‘부부는 서로 닮는다’는 옛말이 이번처럼 잘 들어맞는 사례가 또 있을까.
박근혜정부의 비선 실세로 드러난 최순실(60·최서원으로 개명)씨의 국정농단 의혹이 일파만파로 번지면서 2014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정윤회(62)씨 국정개입 의혹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최씨와 정씨는 1995년 결혼해 딸인 승마선수 정유라(20)씨를 낳고 20년 가까이 살다가 2014년 이혼했다.
정씨 사건은 2014년 11월 세계일보가 ‘靑 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 측근(정윤회) 동향’이란 제목의 청와대 문건을 인용해 “정씨가 대통령 측근 인사들과 정기적으로 만나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 교체 등을 논의했다”고 보도하며 시작됐다.
해당 문건은 정씨가 ‘십상시(중국 후한 영제 때 권력을 쥐고 조정을 농락한 10명의 환관)’라 불리는 청와대 비서진 10명과 비밀회동을 하는 등 국정에 개입했다는 충격적 내용이 담겨 있었다. 박 대통령이 보도를 ‘찌라시’라고 폄훼하고 십상시로 거론된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 등 청와대 비서진이 세계일보 기자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며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김수남 현 검찰총장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수사를 진두지휘했다. 중앙지검 형사1부와 특수2부가 나서 청와대 비서진이 고소한 명예훼손 사건, 청와대 문건이 외부로 유출된 경위를 각각 수사했다.
정씨는 물론 박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EG 회장도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박관천 전 청와대 행정관이 문건 작성자로 지목돼 구속됐다. 검찰은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범행을 주도한 것으로 판단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에서 기각됐다. 검찰은 약 1개월에 걸친 수사 끝에 박 전 행정관과 조 전 비서관을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고 수사를 마무리했다.
당시에도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이란 표현이 꼬리표처럼 따라 붙었고 심지어 ‘실은 정씨가 아니고 그의 옛 부인 최씨가 진짜 비선 실세’라는 얘기까지 떠돌았지만 수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검찰은 철저하게 청와대 문건 유출 경위에만 초점을 맞춰 “청와대가 내린 ‘가이드라인’만 충실히 따른 반쪽짜리 수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수사 책임자인 김 총장은 이후 대검찰청 차장을 거쳐 지난해 박 대통령에 의해 검찰 총수로 임명됐다.
법원 재판이 시작되자 검찰 수사가 반쪽도 아니고 아예 ‘0점짜리’였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1·2심은 문제의 청와대 문건이 대통령기록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조 전 비서관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박 전 행정관은 일부 개인비리 혐의만 유죄로 인정돼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검찰의 상고로 이 사건은 현재 대법원이 심리 중이다. 청와대 비서진은 최근 세계일보 기자들에 대한 고소를 취하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