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6-11-02 19:12:16
기사수정 2016-11-02 22:11:39
대형무기도입사업과 안보정책에도 박근혜정부 비선실세로 지목된 최순실(60·최서원으로 개명)씨의 입김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군 당국은 부인하지만 소문이 점점 확산하면서 정부에 대한 불신이 더욱 깊어지는 기류다.
우선 최씨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주한미군 배치 결정과 배치 지역 변경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정부는 2014년 6월3일 커티스 스캐퍼로티 당시 한미연합사령관이 공개석상에서 “사드의 주한미군 도입을 미 국방부에 요청했다”고 언급한 뒤 ‘전략적 모호성’을 견지했다.
|
박근혜정부 비선실세로 지목된 최순실씨가 대형 무기도입사업과 안보정책에도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차기전투기(F-X) 기종인 미국 록히드마틴사의 F-35A(위)와 사드 미사일 발사 장면. 세계일보 자료사진 |
정부는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의 제4차 핵실험(지난 1월6일) 직후인 1월13일 신년 대국민 담화 및 기자회견에서 “안보와 국익에 따라 사드를 검토하겠다”고 밝히자 입장을 바꿨다. 6개월 후인 7월8일 한·미 양국은 주한미군 사드 배치 결정을 전격 발표했다. 하지만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발표를 불과 며칠 앞두고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이를 부인했다. 미국 측과의 사드 배치 논의를 진두지휘한 한 장관의 이러한 태도는 청와대와의 사전 조율에 문제가 있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고, 누군가 뒤에서 ‘조종’한 게 아니냐는 추측을 낳았다.
이것만이 아니다. 사드 배치 지역을 경북 성주군 성산포대에서 롯데스카이힐 성주골프장으로 변경하게 된 것도 박 대통령이 성주 주민과의 만남에서 대체부지를 찾아보겠다는 식의 의사를 전달한 게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이전까지 사드 배치 최적지로 성산포대를 고수하던 군 당국에게는 매우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사드 배치 논의가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롤러코스터를 타고, 대통령 연설문을 최씨가 주무른 것으로 알려진 점에 비춰 사드 배치를 결정하고 주둔 지역을 정하는 데 최씨가 어떤 식으로든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군 관계자는 “최씨가 사드 배치 추진에 개입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도 “발표 시기 등과 관련해 대통령 마음을 움직였을 가능성은 배제하기 어렵다”고 여운을 남겼다.
3년 전 차기 전투기(F-X) 3차 사업도 도마에 올랐다. F-X는 공군이 보유한 F-4 등 노후 전투기들을 대체하는 7조3000억원대의 대형 국책사업이다. 정부는 2013년 8월 보잉사의 F-15SE로 점찍었다가 한 달 뒤 미국 록히드마틴사의 F-35A로 바꿨다. 의혹의 핵심은 이 과정에서 최씨가 모종의 역할을 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국방부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지만 의혹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기종이 변경된 과정이 석연치 않아서다. F-X로는 F-35A와 F-15SE, 유럽의 유로파이터 ‘타이푼’ 기종이 경쟁했다. F-15SE와 유로파이터는 F-X 평가 핵심 항목인 가격과 기술이전 측면에서 군의 요구를 충족했으나 F-35A는 미달했다.
방위사업청은 F-35A를 제외하고 F-15SE와 유로파이터 2개 기종을 대상으로 평가를 진행하다 2013년 8월 F-15SE로 압축했다. 그러나 역대 공군총장 17명이 F-15SE에 반대하는 건의문을 작성해 국회와 청와대, 국방부에 전달하며 분위기는 반전됐고, 결국 F-35A가 낙점됐다. F-X 사업에 참여했던 전직 방사청 관계자는 “전투기 60대를 살 돈으로 F-35A 40대만 구매한 데다 록히드마틴이 능동위상배열(AESA) 레이더 등 4개 핵심기술 이전과 관련해 말을 바꿨는데도 정부가 어물쩍 넘어간 데는 석연치 못한 구석이 적지 않다”면서도 “사업 추진 과정에서 최씨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최씨의 전 남편인 정윤회씨에게서 전화를 받은 일은 있다”고 전했다.
정부가 4년 만에 재추진키로 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도 마찬가지다. 최씨 국정농단 의혹을 덮기 위한 국면전환용 카드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국방부 관계자는 “국민 여론이 좋지 않고 야권이 반발하고 있어 연내 협정 체결이 힘들 듯하다”고 밝혔다.
박병진 군사전문기자 worldp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