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6-11-03 01:18:09
기사수정 2016-11-03 01:18:09
거국중립내각 사실상 거부 / 책임총리 전권 보장해 줘야 / 불통정치론 난국 수습 못해
박근혜 대통령이 김병준 국민대 교수를 국무총리에 내정하는 깜짝 카드를 꺼냈다. 김 총리 내정자는 노무현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실장과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을 지낸 야권 인사다. 신임 경제부총리와 국민안전처 장관에는 모두 호남 출신인 임종룡 금융위원장과 박승주 한국시민자원봉사회 이사장을 각각 내정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사태로 흔들리는 국정을 수습하겠다며 청와대 참모진 개편에 이어 내놓은 두번째 조치다.
총리 인선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야당은 말할 것도 없고 여당 안에서도 반발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더 이상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아니다”라는 비난도 나왔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 3당은 원내대표 회동에서 임명 철회를 요구하고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부하기로 했다. 김무성 전 대표를 비롯한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도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시중 여론도 부정적이다. 총리 내정자가 국회 인준을 통과하려면 재적 의원 과반 출석에 과반 찬성이 있어야 한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야당이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김 내정자는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없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국정 정상화 방안 마련을 위한 여론 수렴차 각계 인사들을 만났다. 새누리당 지도부와 상임고문단, 시민사회 원로들을 만난 자리에서 “대통령은 뒤로 물러나고 책임총리가 나라를 운영하는 거국내각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여러 쓴소리도 있었다고 한다. 그 결과로 나온 것이 김병준 총리 카드다. 청와대는 “정치권이 요구하는 거국중립내각 취지를 살리기 위해 김 교수를 책임총리로 발탁했다”고 했다. “총리에게 대폭 권한을 줘 내치를 새 총리에게 맡기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이번 인선은 실망을 넘어 절망을 안겨주고 있다. 총체적 난국을 수습할 의지나 능력이 과연 있는 것인지조차 의심스럽다. 비선실세 국정농단 파문으로 민심은 폭발 직전이다. 국민들 사이에선 하야 퇴진 목소리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박 대통령이 국민 앞에 엎드려 사죄해도 부족할 판이다. 이런 마당에 사전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거국중립내각’ 운운하며 총리 인선을 선심쓰듯 꺼내 든 것은 오만이고 독선이다. 그동안 수없이 비판받은 불통·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이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민심과 한참 동떨어진 박 대통령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보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는 있는지도 의문이다. 이래서는 “대통령이 아직 정신을 못 차렸다”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은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국민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고 국가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국정을 위기에 빠뜨린 실정(失政)에 전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40년 가까이 가족처럼 지낸 지인과 자신의 손으로 임명했던 참모와 공직자가 각종 비리 의혹의 장본인으로 국민에게 돌팔매질을 당하고 있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다.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고백하고 검찰 수사를 자청해야 한다. 이제라도 겸허한 자세로 야당에 이해와 협조를 구해야 한다. 대통령의 결자해지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