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책임 못진다”는 안종범… 검, 대통령 직접 겨누나

피의자로 검찰 출석해 “침통한 심정” / “지시받았나” 질문에 “검찰에 말할 것” / “대통령 지시로 재단 모금” 보도 나와 / 핵심인물 안종범도 책임 떠넘길 땐 결국 박 대통령 수사 대상에 올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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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통한 심정이다. 잘못된 부분은 책임지겠다.”

2일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안 전 수석의 발언은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과정에서 대기업들을 상대로 진행한 모금이 그의 책임이란 점을 인정한 것처럼 들린다. 그렇다면 최순실(60·개명 후 최서원)씨의 국정농단 의혹은 안 전 수석과 최씨 2명이 형사처벌을 받는 선에서 마무리될 수도 있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2일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 청사에 들어서면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안 전 수석은 청와대 경제수석이던 2015년 최순실씨와 함께 대기업들에 미르·K스포츠재단 기금 출연을 강요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남정탁 기자
하지만 이날 한 조간신문은 안 전 수석이 주변에 ‘나 혼자 책임질 순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은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과 최씨 둘이 알아서 했고 안 전 수석은 나중에 박 대통령 지시로 조금 거들기만 했다는 것이다.

안 전 수석이 이런 입장을 견지한다면 검찰 수사는 그를 넘어 박 대통령을 직접 겨냥할 수밖에 없다.

안 전 수석은 검찰에 출석하면서 “박 대통령 지시를 받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검찰에서 모든 걸 말하겠다”고만 답했다. “최씨를 아느냐”는 질문에도 침묵을 지켰다. 현 정부 고위공직자 출신이라면 응당 “대통령은 전혀 모르는 일이고 다 내 책임”이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모호한 태도를 취한 것이다.

검찰은 지난달 29, 30일 이틀에 걸쳐 청와대에 있는 안 전 수석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처음엔 압수수색에 난색을 표한 청와대는 나중에는 검찰이 요구한 자료 대부분을 내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안 전 수석과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실 비서관 사무실에서 확보한 자료는 종이상자 7개 분량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더욱이 박 대통령은 일괄 사표를 제출한 청와대 참모들 가운데 안 전 수석의 사표를 가장 먼저 수리했다. 안 전 수석이 박 대통령과 청와대에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란 추론이 나오는 이유다.

이날 검찰은 최씨에 대해 직권남용과 사기미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안 전 수석과 공범관계”라고 밝혔다. 박 대통령 가신 출신도 아닌 안 전 수석이 최씨와 범행을 공모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라면 둘 사이에 박 대통령이 있었다고밖에 볼 수 없다. 검찰 수사가 결국 박 대통령 본인을 향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씨가 이틀째 조사를 받은 뒤 2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나와 서울구치소로 향하는 차량안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연합
헌법에 따라 박 대통령은 임기 중 형사소추를 당하지 않는 특권을 지닌다. 여기서 형사소추가 ‘기소’는 물론 ‘수사’까지 포함하는 개념인지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야권에선 “박 대통령을 기소하는 것은 헌법상 불가능하지만 수사 자체는 가능하다”며 “박 대통령 스스로 수사에 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재야 법조계 일각에서도 “의혹이 제기된 이상 박 대통령이 자원해 조사를 받는다면 헌정사에 좋은 선례로 남을 것”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검찰은 여전히 신중한 입장이다. 앞서 김현웅 법무부 장관은 국회에 출석해 “대통령의 형사면책 특권에는 수사도 포함된다는 것이 다수설”이라고 말했다.

검찰 특별수사본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안 전 수석에게 미르·K스포츠재단 모금을 지시했다면 수사 대상이 되느냐”는 질문에 “지금 말할 단계가 아니다”고 조심스럽게 답했다.

김태훈·남혜정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