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6-11-02 22:10:42
기사수정 2016-11-02 23:14:32
2003년 한나라당, 대기업서 불법대선자금 823억원 갹출 / 당 존립 흔들… ‘천막당사’로 극복 / 명목만 다를 뿐 수법 등 유사
박근혜 정권의 비선실세로 드러난 최순실(60)씨의 국정농단을 수사 중인 검찰이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기금을 출연한 기업 전반을 조사키로 함에 따라 대기업들이 검찰에 대거 불려올 처지에 놓였다.
검찰은 이르면 3일부터 두 재단에 출연한 기업 관계자들을 불러 조사할 방침인 것으로 2일 알려졌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자금을 출연한 기업은 모두 53개다.
이처럼 많은 기업이 단시간에 검찰에 무더기로 불려와 조사받는 상황은 2003년 말부터 다음해 초까지 ‘차떼기 사건’으로 불렸던 대선자금 수사가 이뤄진 이래 12년 만의 일이다.
당시 대부분의 기업을 조사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2002년 대선 기간 한나라당이 삼성, 현대, LG, 한화 등 대기업에서 불법으로 정치자금 823억원을 받았다고 밝혔다. 17대 총선을 목전에 둔 시점에 검찰이 이회창 후보를 중심으로 한 ‘차떼기’의 전모를 밝히면서 당시 한나라당은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하지만 당시 박근혜 대표는 ‘천막당사’를 차리는 등 배수의 진을치고 121석을 얻어내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차떼기 사건은 최씨 등의 ‘지시’를 받은 기업들이 일사불란하게 미르·K스포츠재단에 돈을 입금한 것과 유사하다. 다만 차량 대신 문화융성과 스포츠 활성화 등의 명목으로 계좌를 통해 출연금을 낸 점이 달라졌을 뿐이다. 차떼기 사건 때보다 수법이 세련됐다.
기업들의 처지 역시 비슷하다. 표면적으로는 ‘을’의 위치에서 돈을 상납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업답게 실리를 챙기려 했다는 점에서다. 검찰은 차떼기 사건에서 기업들을 피의자로 신분을 특정했는데, 이번에도 기업들은 최씨 측에 돈을 건네고 모종의 이익을 얻으려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시민단체인 투기자본감시센터는 9월에 뇌물수수 혐의로 최씨와 안종범(57)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을 검찰에 고발하면서 “기업들이 조직적으로 거액을 모은 것은 세금 감면 등 특혜를 받으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일부 기업이 정책적 혜택이나 총수 등의 사면·복권 등을 노린 것이란 추측도 법조계에서 나돌고 있다.
검찰은 아직 기업들을 ‘피해자’로 규정하고 최씨와 안 전 수석에게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했지만 조만간 ‘뇌물죄’ 사건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럴 경우 재단에 출연금을 낸 각 기업 결재 라인도 뇌물죄의 공범으로 사법처리될 수 있다.
박현준 기자 hjunpar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