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쉽지않는 고전, 새로운 가능성 엿보다

한길그레이트북 20년간 150권 출간
슬픈열대 등 고전 70만부 팔려
견고한 독자층 있어 명맥 이어와
젊은층 유인 위한 변신 시도중
교보문고 추진 ‘리-커버:K’ 대표적
표지 디자인만 바꿨는 데도 독자 급증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사진 왼쪽)와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한길사의 그레이트북스 시리즈 중 많이 팔린 첫 번째, 두 번째 책이다. 한길사는 “고전을 읽는 견고한 독자층이 있다는 점은 한국 사회의 독서력에 가능성이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한길사 제공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 마르크 블로크의 ‘봉건사회’, 에드문트 후설의 ‘순수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 이지의 ‘명등도고록’ 등.

저자와 제목만으로도 기가 꺾이는 게 사실이다. 단단한 결심이 없다면 끝까지 읽어내는 것도 쉽지 않다.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이다. 책을 읽지 않은 시절, 고전의 설 자리는 더욱 좁아졌다. 고전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그것을 읽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들이 넘쳐나지만 여전히 넘기 어려운 산이다.

그러나 고전은 꾸준히 출판되고 있다. “한 시대를 변화시키고, 한 사회를 도약하게 한, 지적 기반을 견고하게 하는 상당한 토대”가 된 저작들을 소비하는 견고한 독자층은 있다. 전문 연구자들에게 번역을 맡겨 우직하게 독서시장에 고전을 밀어넣는 시도가 이어지고, 특히 고전을 멀리하는 젊은이들을 유인하기 위해 변신을 모색하기도 한다. 


교보문고가 젊은 독자들의 구미에 맞게 표지를 새로 디자인해 내놓은 세계문학고전.
교보문고 제공
◆“한국 사회의 독서력에는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31일, 한길사 김언호 대표가 기자들과 만났다. ‘한길그레이트북스 출간 20주년·150회 돌파’를 알리는 간담회였다. 1996년 첫 번째 책 ‘관념의 모험’(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 지음)을 출간할 때를 기억하며 “우리 사회에서 가능할까라고 걱정하는 분들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걱정이 많았으나 20년을 이어왔고, 앞으로의 20년을 기원하고 있다.

“독자들에게 정말 감사한 일이다. 1980년대에 극적으로 만들어진 교양층이 있는 것 같다. 당시는 사회구성원들이 책을 읽었던 ‘독서의 시대’, ‘출판의 시대’였다. 그렇게 형성된 독자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김 대표가 독자들에게 감사하다고 한 일이란 ‘한길그레이트북스’의 성적이다. 지난 20년간 150권의 책이 나왔고, 70만부가 팔렸다. 가장 많이 팔린 책은 ‘슬픈 열대’(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지음). 4만1500부가 나갔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한나 아렌트 지음), ‘인간의 조건’(〃)이 각각 2만8200부, 2만3300부가 팔려 뒤를 이었다. 김 대표는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고, 내일에도 유용한 책이 고전이다. 적어도 50∼100년은 가는 책”이라고 말했다. 자리를 함께한 김민웅 경희대 미래대학원 교수는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는 요즈음 같은 시기에는 “자본주의 체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분석한 에릭 홉스봄의 저작이나 전근대적 문화가 새로운 형태로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보여주는 ‘봉건사회’ 등이 참고가 될 것이다. 지금의 상황에 대해 허둥대지 않고 긴 시각으로 볼 수 있다”고 권했다.

그러나 책을 판매해 이윤을 얻어야 하는 출판사 입장에서 흡족한 성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20년간의 누적 성적이고, 2쇄도 찍지 못한 책이 40종에 달한다. 최근에 나온 책들의 판매가 떨어지는 것은 시간이 갈수록 고전이 외면받는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김 대표는 “예전에는 대학생들이 고전을 읽었는데 지금은 그런가”라고 물으며 “젊은 사람들이 그레이트북스를 손에 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젊은 독자와 고전, 연결고리가 필요하다

김 대표의 걱정처럼 젊은 독자들이 고전과 멀어지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교보문고가 올해 추진한 ‘리-커버: K’는 그중 하나다. 내용은 건드리지 않고, 기존에 나온 세계문학고전의 표지를 젊은 감각에 맞게 바꿔 선보인 것이다. 이미 출판되어 있는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제인 에어’(샬럿 브론테 지음), ‘위대한 개츠비’(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등 8권을 정해 표지를 새롭게 꾸몄다. 교보문고는 “좋은 고전문학 책들이 많은데 출판사별로 일괄적 디자인에 맞추다 보니 식상함이 있었다. 현대적인 표지로 관심을 끌어 고전을 다시 읽어보는 기회가 됐으면 하는 취지에서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반응은 꽤 좋았다. 하루 10부 정도 판매되던 것이 표지를 바꾼 뒤로 400부 정도로 판매가 신장되기도 했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젊은 독자들이 고전을 멀리한다고 하지만 관심을 가질 만한 계기나 연결고리를 만들어주면 상황이 바뀔 가능성은 있는 것 같다”며 “잘 알려진 저자나 책에 반응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