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검찰 53개 대기업 수사, 이참에 정경유착 고리 끊어야

검찰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기금을 출연한 19개 그룹 53개 기업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벌이고 있다. 최순실씨는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을 앞세워 대기업들이 총 774억원의 기금을 내도록 강요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룹당 적게는 수억원, 많게는 200억원 이상을 냈다. 검찰은 최씨와 안 전 수석을 ‘대기업 강제 모금’의 공범 관계로 보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 관계자들이 무더기로 검찰에 불려올 처지가 됐다.

검찰의 대기업 줄소환은 2003년부터 이듬해 봄까지 이어진 대선자금 수사 이후 12년 만의 일이다. 단기간에 서둘러 모금한 데 비추어 한류 확산과 체육인재 육성이라는 재단 설립 취지에 공감해 사회공헌활동의 일환으로 기금을 낸 기업은 극소수일 것이다. 모금을 주도한 전경련 이승철 부회장도 처음엔 ‘기업의 자발적 모금’이라고 했다가 검찰 조사에선 ‘안 전 수석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고 한다.

이 돈만 문제 되는 게 아니다. 삼성은 승마선수 육성을 명분으로 최씨의 독일 내 회사 비덱스포츠에 35억원을 건넸는데, 돈은 최씨 딸 정유라씨의 말을 사는 데 쓰인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K스포츠재단 회의록에 따르면 지난 2월 당시 경제수석이던 안 전 수석이 지켜보는 가운데 재단 측이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과 70억원 추가 지원 문제를 논의했으나 부영이 ‘세무조사 무마’ 조건을 내걸어 무산됐다고 한다. 은밀히 돈과 특혜를 주고받으려 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정치권 관련 금품수수 사건이 터질 때마다 기업들은 강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응했다고 하지만, 일정한 대가를 챙기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정권이 이런저런 명분으로 기업에서 돈을 거둬들이고 기업은 이권이나 특혜를 반대급부로 챙기는 것을 정경유착이라고 한다. 우리 경제를 뿌리부터 썩게 해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는 요인이다. 이참에 정경유착의 고리를 반드시 끊어야 한다. 정부와 기업 모두 과거 행태를 반성하고, 약탈적 준조세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강력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게 시급한 과제다.